[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먹금'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먹이 금지'의 줄임말인데,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상한 짓을 하는 이들에게 '먹이' 즉 관심을 주지 말잔 뜻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본 뒤 성평등주의자(페미니스트)들을 저격하는 후기를 남긴 김나정 아나운서를 보고 '먹금'이란 단어가 떠오른 건 비단 기자만의 일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나정은 스스로를 '관종'(관심 종자의 줄임말. 다른 이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이들을 이르는 신조어)이라고 불렀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며 "나 관종공주인데 내 생각에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단다. '82년생 김지영'을 본 뒤 "직장생활 할 때도 남자 직원들이 잘 대해주고 해외여행가서도 짐도 다 들어주고 문도 열어주고 맛있는 밥도 많이 사주고 선물도 많이 사주고 예쁜 데도 데려가주고 예쁜 옷도 더 많이 입을 수 있고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대접받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들도 너무 많은데, 부정적인 것들에만 주목해 그려 놓은 영화 같다는 생각"이라고 쓴 글이 긍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을리가. 그런데 이 글에 대한 많은 이들의 분노가 화제가 되고, 언론사가 달려들어 '김나정 아나운서 누구' 같은 기사를 쓰며 화제를 더욱 키우고, 그러면서 김나정을 두둔하는 '일부' 누리꾼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니 한숨이 난다. SNS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관심으로 먹고 사는 '관종 경제'의 시대. 그 단적인 부작용을 목격한 것 같다.

하염없이 늘어지고 주술어도 맞지 않는 문장은 차치하고라도(김나정의 직업은 아나운서 아닌가) 이 글에는 기함할 부분이 너무 많다. 왜 여자는 누군가에게 '잘 대해져야' 하고 '대접을 받아야' 하고, 예쁜 데를 '데려가져야' 하는가. 왜 여자는 반드시 자신에게 문을 열어주고, 예쁜 데를 데려가 주고 대접해 주는 상대가 있어야만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까.

김나정 스스로가 그런 것을 행복이라고 느낀다면 거기에 뭐라고 할 마음은 없다. 그냥 본인은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런데 마치 그것을 모든 여성들에게 주어지고, 모든 여성들이 받아야 하는 행복과 즐거움인 것처럼 서술한 글에는 언짢은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속옷 같은 것만 입고 화보를 찍어서 돈을 벌고 남자들에게 몸매가 예쁘다는 칭찬을 받는 게 즐겁고 행복한 일일 수 있어도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의 몸이나 외모를 품평 받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김나정은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유난스럽게 싸우는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고 "바보같은 여자들"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그러고 나서 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나의 의견은 페미니즘이나 영화 자체에 대해서 '맞다, 틀리다'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란다. 누군가를 "바보 같다"고, "유난스럽다"고 깎아내리긴 했지만 틀렸다고 한 건 아니다. 술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뭐 그런 건가.

그리고 페미니즘은 성 평등에 대한 담론이다. 그것은 누가 함부로 '맞다, 틀리다'를 할 수 없는 게 당연한 부분이다. 이런 와중에 남자는 여자의 짐을 들어줘야 하고 맛있는 밥도 많이 사줘야 하고 선물도 많이 사줘야 하고 예쁜 데도 데려가 줘야 한다고 쓴 김나정의 글에 '데이트 비용 반반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남성'들이 왜 지지를 표하는지 참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쓴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유난스럽게 예쁜 것에 집착하고 자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부당함에 눈 뜨지 못 한 삶이 별로 즐겁고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그보단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믿고 사는 게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삶인 것 같다. 물론 이건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사진=김나정 인스타그램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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