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편집자]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대통령의 시간’, ‘국회의 시간’, ‘ㅇㅇ의 시간’ 등의 허울좋은 정치적 수사(修辭)가 식상하기 조차하다. 그럼에도 이즈음은 단언컨대 ‘단풍의 시간’이다. 드높은 하늘아래 아름답게 채색된 산천이 깊은 가을정취를 담아낸다. 흐르던 시간마저 고운 자줏빛 단풍잎에 멈춰선 느낌이다.

잠시 시간이 머문 공간에 오래된 팝송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짐 크로치’의 기타 선율이 실린 ‘Time in a bottle’ 첫 소절에 나오는 가사 ‘시간을 병 속에 모아 둘 수 있다면’이다. 영원히 살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를 소망하는 노랫말이 비행기사고로 서른의 나이에 요절한 그의 운명에서 아련하게 묻어난다.

사실 시간은 인간의 관념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과거라는 시간은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고 미래는 기대의 형태로 존재하며 현재는 인식될 뿐이다. 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처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으로 절대적인 시간을 말한다. 반면 ‘카이로스’는 특정한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상대적인 관념이다.

‘파블로 피카소’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그가 공원에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으니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는 일필휘지로 여인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50만 프랑을 요구했다. 여인은 몇 분밖에 안 걸렸다고 놀라 항의한다. 그러자 피카소는 여인을 그리는데 40년이 걸렸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여인은 ‘크로노스’를 말하고, 피카소는 ‘카이로스’를 주장한 것이다.

인간은 규칙적이고 정형화된 시간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지만 스스로 느끼는 ‘시간의 무게’는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을 가진 ‘워라밸’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단어다. 인공지능, 로봇, 긱(Gig)경제가 등장하는 경제변화로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추세다.

정부도 장시간근로관행을 지양하고 ‘워라밸’의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주52시간제’가 내년부터 종업원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도 확대 시행된다. 최소임금인상과 더불어 우리경제의 경제활력을 저하시키는 주범으로 꼽히는 요인이다.

특히 자동화와 스마트화에 취약한 중소기업일수록 상대적인 부담이 클 것이다. 결국 시점의 문제일 뿐 ‘주52시간제’는 현실화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및 ‘외국인할당제’의 확대와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그리고 ‘계도기간’ 설정 등 다양한 맞춤형 보완책 마련이 기대되지만 어느 정도는 ‘크로노스’적 한계가 있다. ‘카이로스’적 접근이 필요한 지점이다.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조직몰입’의 근로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또한 직무와 성과급중심의 임금체계개선 등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지혜를 함께 모을 때이다.

칼럼리스트=이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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