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정유미가 사회의 단면과 맞닿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관객 앞에 섰다. 극 중 주인공 김지영 역을 맡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김지영’을 위로했다. 누군가의 엄마로, 딸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그린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소설을 모티브로 극화했다. 동명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받는 직장 내 성차별, 고용시장에서 받는 불평등, ‘독박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을 다룬 만큼 ‘페미 소설’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일부는 가혹한 비난을 일삼았고, 영화 개봉이 알려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정유미는 담담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다”며 “그동안 소홀했던 주변 사람들, 가족이 생각났다”고 털어놨다.

-혹자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내가 본 것과 너무 달랐다. 내 주변에 책을 읽은 사람들도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읽었다고 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가족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 계기가 됐다.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로, 좋은 이야기로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엄마 역할은 처음인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나.

“이미 김도영 감독님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의지했다. 주변 친구들은 시나리오보다 소설을 먼저 접했는데 ‘잘 표현해 달라’ ‘정말 그렇게 살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했다. 모든 친구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공감하는 지점이 어느 정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이 이야기를 잘 표현해서 친구들이나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영 뿐 아니라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대별로 나온다. 공감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 속 어린 지영이 엄마(김미경)에게 ‘엄마는 왜 선생님 안 했냐’고 하는 장면에서 심장이 ‘쿵’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 장면이다. 그 때 엄마가 하는 말이 ‘은영이, 지영이 엄마여야지’라고 답하지 않나.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들도 하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우리 키운다고…….그런 걸 거창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지냈을 마음이 생각났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고 감사했다. ‘아무나 엄마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게 짠했다.”

-영화를 직접 찍으면서 서글펐던 순간이 있나.

“그런 적은 없었다. 영화 현장이라는 곳이 워낙 바쁘게 흘러가고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면 내 자신이 힘들어진다. 그 때마다 몰입을 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를 찍으면서 가슴이 아프거나 아리긴 하다. 하지만 상처 받고 싶지 않다. 다행히 이 이야기가 희망적이지 않나. 관객들로 하여금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시간도 될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연기 호흡을 해야 했다. 실제로 육아 경험이 없으니 더 힘들었을 텐데.

“아이가 작아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래 안고 있으니까 팔이 너무 아팠다. 촬영하는 몇 시간 동안은 허리가 끊어질 듯 했다. 그냥 안고 있는 장면도 있지만 시트벨트를 하고 있을 때는 허리가 아파서 버티기 힘들었다. 정말 어머니들은 대단한 것 같다.”

-극 중 지영은 다른 사람의 말을 한다. ‘빙의’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나.

“지영이 어릴 때부터 본 엄마, 가끔 뵈었던 외할머니, 친구 등 여러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자신이 커서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감당하지 못한 상황이 왔을 때 그런 식으로 표현되지 않았나싶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해석하고 연기했다.”

-김도영 감독은 배우 출신이다. 연기를 해 본 사람으로서 인상 깊은 조언이 있을 것 같은데.

“감독님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구체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연기를 하기 전에 이미 기술적인 이야기가 다 끝난 상태였다. 연기를 해 본 분이라 그런지 세심한 것 하나하나 발견했다. 내게 ‘눈썹을 그렇게 움직이지 마’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웃음)”

-부모님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나도 궁금하다.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부모님 문자에 제때 답장하려고 한다. 그동안 무뚝뚝하게 말한 게 죄송했다. 가끔 전화 드리면 너무 좋아하신다. 내가 장녀라 관심이 많으셨는데 잘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이다. 밑으로 남동생이 있는데 날 더 아껴주셨다. 남동생은 알아서 잘 커줬다. 결혼도 했고, 조카도 있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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