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에 위치한 600년 아라가야의 비밀을 품은 말이산고분군 전경. 박대웅 기자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100년 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고적조사라는 미명 아래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소재하는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의 낮은 구릉(해발 40~70m)을 파헤친다. 명백한 도굴행위다. 조사자인 야쓰이 세이이쓰는 현재 말이산고분 13호분으로 불리는 능에서 유물 두 점을 출토하고 도면과 유리건판 사진 일부를 남겼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현재. 함안군과 문화재청 등은 지금까지 20차례의 발굴조사로 아라가야의 600년 역사를 서서히 밝히고 있다. 
 
◆ 삼국과 당당히 맞선 강력한 고대 국가 아라가야
 
함안은 경상남도의 한 가운데 위치하며 남쪽에는 낙남정맥이 지나고 북쪽에는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리적 장점으로 예로부터 동서남북 사통팔달의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런 함안에 기원을 전후한 삼한시대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6세기 중엽까지 약 600년간 아라가야가 들어섰다.
 
아라가야는 연합체 형태인 가야의 여러 나라 중 '형님' 또는 '아버지'로 불릴 만큼 가야국을 대표하는 강력한 힘과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영토는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진주, 의령의 일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함안은 아라가야의 고도였던 만큼 말이산고분을 비롯해 130군데가 넘는 크고 작은 고군분과 왕궁지, 대형건물지(당산유적), 산성, 토기가마 등 가야시대 유적들을 온전한 모습으로 품고 있다. 
 
 

아라가야가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하며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라가야시기 토기 모습. 박대웅 기자

◆ 아라가야인의 타임캡슐 말이산고분군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된 고분군으로 600년간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5세기 후반~6세기 초에 집중조영됐으며 남-북으로 이어진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가지능선의 정부(頂部)에 대형 봉토분이, 사면부에 중소형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또 말이산 북쪽 일대에는 아라가야의 전신인 삼한시대 안야국(安耶國)의 목관묘와 목곽묘가 밀집 분포돼 있다. 말이산고분군은 기원 전후부터 아라가야 멸망까지 약 600년간의 고분들이 대를 이어 조영되면서 만들어진 셈이다. 
 
말이산고분군이 후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처음 발굴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일제의 발굴조사는 고분군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 연구자에 의한 발굴조사는 1986년 최초로 실시됐으며 이후 2019년 말 현재 기준 말이산 45호분 조사까지 모두 20차례 실시됐다. 현재에는 함안 가야리유적(사적 제554호)의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1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묻혀 있던 아라가야의 유물들은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약 240기의 고분에서 1만2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토기를 비롯해 사슴모양뿔잔, 집모양토기, 배모양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굽다리등잔, 말갑옷, 새모양장식미늘쇠 등 아라가야가 고대 국가로서 삼국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음을 잘 보여준다. 
 
◆ 아라가야를 세계로…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중인 말이산고분
 
15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말이산고분군은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2013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회의는 말이산고분군이 고대 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가치를 인정하면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했다. 함안군은 2023년 최종 등재를 목표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호 해인사 장경판전(1995)을 시작으로 종묘(1995)와 석굴암과 불국사(1995) 등 문화유산 11건과 자연유산 1건을 세계유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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