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열연 펼치고 있는 장은아.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뮤지컬 배우 장은아에게 2019년은 유난히 특별한 해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광화문연가'부터 '엑스칼리버',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굵직한 세 작품에 이름을 올렸고, 연기력도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최근 출연하고 있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장은아에게 연기를 대하는 새로운 자세를 안겨준 의미 있는 작품이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포기했다는 장은아. 무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장은아에게 작품과 삶에 대해 물었다.

-'엑스칼리버'에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강한 임팩트를 가진 인물들을 연이어 연기하고 있다.

"뮤지컬을 한 지 7년 정도 됐다. 그러는 동안 두 달 이상 쉰 적이 없는 것 같다. 올해는 '엑스칼리버' 이후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났고, 또 곧바로 '레베카'에 들어간다. 작품 사이에 크게 쉬질 못 해서 조금 힘들긴 하지만 배우로서 좋은 작품에 계속 함께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일이 이렇게 이어질 땐 계속 있지만 또 없을 땐 없는 것 아닌가. 이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 아르노는 굉장히 혁명적이고 고뇌도 많이 하는 캐릭터다. 쉽게 연기하기 어려운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1막을 보면 마그리드 아르노를 비롯해 백성들은 정말 배고프고 힘든 상황에 빠져 있는데 왕은 그런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빵 한 조각이 없어 굶는데도 극빈층이라 잘못된 정권에 대항할 힘조차 내지 못 한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누군가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지 않나. 사실 난 굉장히 평등함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평등하지 못 한 세상을 볼 때 분노하는 기질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못 지나가고 공평하지 못 한 세상에 한탄한다. 내가 착하다는 게 아니라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의인 거다. 마그리드 아르노를 연기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혁명에 성공한 뒤 마그리드 아르노가 단두대에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면서 고뇌하는 장면이 있다. 그 부분에서 충격을 받고 허무한 감정을 느꼈다는 관객들도 있다.

"마그리드 아르노가 성 안에 들어가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감시하잖나. 그러면서 '내가 저 사람을 지금껏 잘못 알아온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삶에 대한 오해라고 할까. 인간에겐 누구나 그런 오류가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런 인간의 오류를 그리고 싶었다. 마그리드 아르노는 혁명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지 않으면 남의 사정은 알 수 없다. 배고픔 때문에 들고 일어났고, 그 혁명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그 과정. 마그리드 아르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져서 단두대로 올라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면서 엄청난 혼란과 자괴감을 느낀다.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사람은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들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고민과 답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그리드 아르노로 분한 장은아.

-현시대상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촛불 집회 같은 좋은 예가 있는 한편 정당한 이유 없이 어떤 한 사람이 매도되는 일도 쉽게 목격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 본다. 내가 생각하는 것, 마그리드 아르노의 생각, 뭐 그런 것들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문제라고 본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작품인데 감정적인 면에서는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나.

"배우들마다 생활과 무대를 연결하는 방식이 다 다른데 나는 공연을 위한 삶을 살긴 하지만 공연 내용을 현실로 가져오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만의 방법은 기도다. 공연을 하기 전에 '내가 마그리드 아르노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들어간다. 그렇게 공연을 마치면 털어내려고 한다. 어쩔 때는 잠들기 전까지 (공연 생각에) 힘들기도 한데, 그건 나만 겪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 대신 일상 생활에서 공연 내용을 막 연결시키고 그러지는 않는다."

-장은아의 일상은 어떤가.

"사실 최근의 나는 공연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 말 자체를 평소엔 많이 안 하는 편이다. 비싼 돈 주고 공연을 보러 와 주시는 관객 분들에게 똑같은 컨디션으로 똑같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컨디션 관리는 정말 열심히 한다. 예전에는 공연이 이틀만 없어도 술을 마실 정도로 그런 자리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안 한다.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좋아서 이런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럼 쉴 때는 무엇을 하나.

"혼자 여행 다니는 걸로 스트레스 같은 걸 많이 푸는 편이다. '아이다' 하기 전에는 하와이에 혼자 한 열흘을 다녀 왔다. 필리핀, 태국도 혼자 갔다. 나 혼자 온전히 털어내고 퍼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장은아.

-장은아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역시 무대에 올라갈 때다. 이 직업의 매력이 있다. 정말 너무 힘들어도 뿌듯하다. 그 맛에 계속 작품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처음엔 노래를 하고 싶어서 뮤지컬계에 왔다. 무명 가수로 오래 있다 보니 노래를 마음껏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정말 좋은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무대에 서는 이리 너무 감사하고 포기할 수 없다. 지금도 무명 시절을 겪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런 살람들을 많이 이끌어 주고 싶고 좋은 선배,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계속 무대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엑스칼리버'에 이어 '마리 앙투아네트'에서까지 연기적으로 호평을 많이 받고 있는데.

"배우로서 딜레마에 빠지고 '이 길이 맞는 건가' 싶었을 때 '엑스칼리버'의 모르가나를 만났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뜨거운 호응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번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 아르노를 통해서는 관객 분들과 많이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앉아 계신 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게 무대에서도 느껴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내가 지금까지 했던 뮤지컬들 가운데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고 말을 하는 작품인 것 같다. '엑스칼리버' 때는 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면, '마리 앙투아네트' 때는 그 불을 조금 식히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자유롭게 활보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비로소 무대에서 자유로워졌구나' 느꼈다. 더 성장하고 싶다."

-곧 '레베카'로도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데.

"예전에는 공연 막이 오른 다음에 투입이 돼서 정신이 없었다. 캐릭터 해석에 대해서 신경 쓸 겨를이 많이 없었다. '실수만 하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한층 더 깊은 연기를 보여드리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사진=EMK, C9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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