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런'을 완주하고서.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바람이 알맞게 불었고 습도도 적당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너무 오버스러운 거 아닌가' 했던 쇼츠와 반팔이 고맙게 느껴진다. 겉옷을 입고 달리던 러너들이 하나, 둘 옷들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지난 달 27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마블런'이 열렸다. 아시아 최초로 2016년 국내에서 개최된 '마블런'은 지난 해 2회를 진행,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스타트라인에 선 참가자들과 마블 히어로, 빌런들.

약 8000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마블런'은 러너들에게도 호사스러운 행사다. 통상 마라톤 대회 5~10km 부문 접수비가 2만 원 가량이라면 '마블런'은 배가 되는 4만5000원이다. 여기엔 한정판 레고, 갤럭시 버즈 케이스 등 마블 굿즈들이 포함돼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다소 비싸다고 느껴졌다.

대회 당일 늦잠을 잤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1시간 가량 늦게 일어나다 보니 '가기 싫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꺼져가는 의지의 불씨를 간신히 살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대회장으로 나섰다. 택시가 안 잡혀 하는 수 없이 모범까지.

'마블런' 참가자들이 달리고 있다.

이런 다소 쳐졌던 기분이 대회장에 도착하자마자 180도 바뀌었다. 스파이더맨, 헐크 등 마블 히어로로 변신한 참가자들은 시선을 독차지했고, 대회 곳곳에 마련된 마블 히어로들의 조형물들 앞엔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레고, KT 등에서 마련한 다양한 부스들이 참가객의 시선을 끌었다. 마라톤 대회는 어딜 가나 활기찬 분위기지만 이렇게 어떤 크루에 속했는지와 관계 없이 참가자들이 곳곳에 흩어져 서로 어울리는 광경은 찾기 어렵다. 기록보다 마블과 관련된 축제를 즐기러 온 페스티벌 관객들 같은 분위기였다. 어떤 러닝 크루에도 속하지 않은 개인 러너인 우리 부부도 금세 현장에 녹아들었다.

코스 중간 나온 터널에서는 디제잉 공연이 진행됐다.

백미는 코스였다. 10km 부문의 경우 서울광장에서 시작해 여의도 공원으로, 5km 부문은 여의도 공원 일대를 도는 코스였는데, 뛰는 내내 러너들이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게 다양한 응원단과 시설들이 설치돼 있었다. 조금 뛰다 보면 금방 포토 스팟이 나왔고, 지치려고 할 떄면 DJ 박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난 7월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이제 겨우 5개월차인 병아리 러너이지만, 이때껏 뛴 어떤 대회보다도 뛰기가 수월했다. 피니시 라인을 발견했을 때는 '벌써 끝이라고?'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자의 배번호와 메달.

최근 러닝을 즐기는 젊은층이 늘면서 메달 역시 트렌디하게 변화하고 있다. 참가비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지는 고퀄리티의 메달에 '참가비가 비싸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스낵을 먹으며 돌아오는 길 4회째를 맞을 '마블런'에 참가하는 장면을 그려봤다.

사진=정진영 기자,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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