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라가즈, ‘배가본드’ 킬러 제롬, 최근 개봉작 ‘버티고’의 ‘나쁜남자’ 진수까지. 배우 유태오는 올 한 해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화제작 ‘레토’에서 주인공 빅토르 최로 분해 괄목할 만한 연기를 보여준 유태오는 이후 수많은 작품의 러브콜을 받으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영화 ‘여배우들’(2009)로 데뷔 후 긴 무명 시절을 겪고 드디어 빛을 발한 유태오는 “피부도 뒤집어지고 매일 힘들긴 하지만 행복하다. 행복한 피로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버티고’에 출연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나. 어떤 점에 강하게 끌렸나.

“시나리오가 정말 잘 읽혔다. 마지막 대사인 ‘힘내요’라 한 마디에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위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날 울컥하게 만들었다. 또 천우희가 이 영화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 끌렸던 것 같다. 전계수 감독님과 ‘러브픽션’(2011)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워낙 멜로영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편지’ ‘접속’과 같은 정통멜로를 좋아한다. 이번 영화를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극 중 연기한 진수는 사내 인기남이지만 알고 보면 상처와 비밀을 지닌 남자다.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영화 속에는 여러 가지 안타고니스트(주인공에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인물)가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진수를 악역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악하게 굴고 싶어서 악역인 사람은 사실 실생활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 자신만의 사연이 있고 갈등이 있다. 진수는 그런 갈등 속에서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통해서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다.”

-멜로 상대인 천우희와 호흡도 궁금하다.

“꼭 다시 한 번 연기하고 싶은 배우다. 마음에 없는 칭찬을 잘 하는 성격이 못 된다. 그런데 천우희는 정말 달랐다. 참 매력적인 개성을 갖고 있다. 개성이 강한 클래식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이기도 하다. 동료배우로서 배울 점이 많다.”

-‘레토’ 이후 러브콜이 많았을 텐데. 스스로 실감하나.

“기분은 좋지만 아직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3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한 번이라도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며 늘 불안해했다. 지금 이렇게 많이 촬영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연기와 스피치 수업을 받고 있다. 하루하루 피곤하지만 행복한 피로감을 느낀다.”

-무명시절 동안 많이 불안했을 것 같다.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이 있나.

“막연한 꿈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냥 나는 연기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한 번도 연기자라는 정체성을 버린 적이 없다. 물론 정말 통장 잔고에 0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도 너무 감사하게 소소한 일거리가 들어왔다. 물론 배우라는 게 판타지적인 직업이라 현실적인 고충은 늘 느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살아왔다.”

-독일 교포 출신으로 오랫동안 타지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정착했다. 직접 바라본 한국문화는 어땠나.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어쩌다 보니 내 배경이 다문화적인 배경이 됐다. 독일에서 태어났다가 미국에서 생활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외로움과 공허함도 느꼈다. 동시에 고통에 관한 자부심도 느끼게 됐다. 연기라는 게 감수성을 전달하는 작업이지 않나. 화가가 색이 많을수록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다양하고 힘들었던 경험이 연기의 도움이 된 것 같다. 감수성이 더 풍부한 배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배가본드’에서는 제롬 역으로 활약했다. 눈에 띄는 액션 연기를 펼쳤는데.

“안 쓰던 근육을 많이 써서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배가본드’에 출연하면서 더 큰 액션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금 시대는 우리나라가 기술적으로 할리우드 못지않은 액션을 만들 수 있지 않나. 특히 기획이 그런 기술을 받쳐줄 수 있다고 본다. ‘엑시트’의 참신한 기획이 액션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준 것 같다.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액션이라면 언제든지 출연하고 싶다.”

-올 한 해 ‘아스달 연대기’ ‘배가본드’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올해 대작으로 꼽힌 드라마에 연이어 캐스팅이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기했다. 동시에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런 반응 때문에 방심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속이지는 못 하니까.”

사진=트리플픽쳐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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