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진심은 통했다. 개봉 전부터 페미니스트 논란으로 화제가 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 5일째 100만 관객, 8일째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11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비수기 극장가에 잔잔한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부장 제도의 폐해와 한국사회의 잘못된 풍토를 꼬집으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시선으로 지영(정유미)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며 실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김도영 감독은 “극장을 나가는 순간 모든 관객들이 ‘내일은 좀 더 낫지 않겠어?’라는 희망을 품길 바랐다”고 했다.

-개봉 당일부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해 흥행 중인데.

“기분이 너무 묘하다. 첫 상업영화이기도 해서 아직까지 낯설다. 빨리 관객들을 만났으면 했는데 이렇게 선보이게 되니 묘하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좋아해 주셔서 감격스럽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서사가 상업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고 생각한다. 이 서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단편영화 ‘자유연기’를 준비하면서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됐다. 내 의식의 균열이 생기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내 삶을 본 것 같았다. 우리 엄마의 삶, 친구의 삶처럼. ‘아, 내가 이런 풍경 속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미쟝센영화제 관계자 추천으로 연출 제안을 받게 됐다. 정말 묘했다. 운명같았다.”

-소설과 달리 희망적인 메시지가 강조된 영화인 것 같다.

“소설은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기능이 있다. 나는 극장을 나가는 순간 관객의 마음이 좀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도 괜찮지 않아?’ ‘내일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겠어?’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했다. 나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김지영’으로서 응원 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판타지적일 수 있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간 지영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원작 소설은 남녀의 의견이 분분하게 갈린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화를 하면서 대현(공유)의 비중을 늘리고자 했나.

“전혀 그런 마음은 없었다. 소설과 결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다 지영에게 이입해서 쫓아가야 하는 영화다. 소설은 지영이 빙의되고 정신과 의사가 화자가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남편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그려지길 바랐다. 배역이 평면적이지 않았으면 했다. 출발 자체가 지영의 병을 알았기 때문에 걱정이 가득한 사람으로 나오게 된다. ‘그녀를 많이 걱정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내가 아프다고 손 붙잡고 우는 것 말고 이상의 뭔가를 보여줬으면 했다. 공유가 정확히 알고 이해했다.”

-공유와 정유미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한데.

“공유한테 정말 많이 고마웠다. 3년 만에 복귀하는데 주인공이 아닌 작품에 함께해줬다. 시나리오만 보고 이 취지에 동의했다. 공유는 균형 감각이 뛰어난 배우인 것 같다. ‘도가니’의 행보도 그랬고. 굉장히 스마트하다. 공유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현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참 재미있었다. 정유미는 투명하고 맑다. 미혼이고 육아 경험도 없지만 그 정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밝은데도 그늘이 있는 얼굴이다. 표정 자체가 스펙터클했다. 두 배우와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실제로도 ‘워킹맘’인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기도 했나.

“극 중에서 회사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워킹맘’이 있다. 나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닐 때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했다.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라 학교를 빠질 수도 없어서 아이를 데려간 적이 있다. 창피하고 속상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또 극 중 지영이 아이의 유모차를 발로 밀지 않나.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고, 아기띠와 한 몸이 돼 살기도 했다.”

-원작 소설이 큰 에피소드나 서사가 있는 건 아니라 화면으로 구성하기 쉽지 않았을 듯한데.

“영화를 만들 때 서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관객이 2시간동안 앉아있어야 하는데 책을 읽을 때 받은 교감을 영화로 정리해야 했다. 내가 이 영화를 하기로 했을 때 초고는 있는 상태였다. 가족들의 따뜻함이나 주변인들의 선의보다 지영을 둘러싼 풍경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그걸 통해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소설이 영화화되면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지 않나. 소설보다 뛰어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소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려고 했다. 능력 닿는 대로 아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다.”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영화를 통해 사회적인 관습이나 성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나마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나.

“이 영화 한편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영’이들이 자신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본다. 내가 어떤 풍경 속에 있는지 알고, 나를 볼 줄 알아야 점차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변의 누군가가 생각나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고맙겠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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