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설마 했던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투표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그룹 아이즈원과 엑스원의 앞날에도 암운이 깔렸다. 특히 컴백을 불과 3일 앞두고 있는 아이즈원은 이미지 훼손에 직격탄을 맞게 됐다. 제작진은 구속됐고, CJ ENM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Mnet, 서바이벌 명가→조작 방송사 오명

처음 '프로듀스X101'의 생방송 투표 조작 논란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랜 기간, 넓은 범위에서 투표 조작이 있었을 거란 예측은 많은 이들이 하지 못 했다. 하지만 일단 논란이 시작되고 나니 참아 왔던 의심이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끝내 제작진은 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시작은 '프로듀스X101'이었다. 엑스원으로 데뷔할 마지막 멤버를 뽑는 생방송 투표에서 일부 연습생 간 득표수 차이가 특정 숫자의 배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논란 초기만 해도 Mnet은 "조작은 없다"는 당당한 입장이었다. '프로듀스X101' 제작진은 "확인 결과 최종 순위에는 이상이 없었다. 득표수는 집계 및 전달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라고 해명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원 득표수를 공개하라고 들고 일어났고,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까지 자신의 SNS를 통해 "Mnet의 추가 해명을 믿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의혹이 커졌다. 결국 Mnet 측은 "논란이 발생한 이후에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으나 사실관계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직접 공신력 있는 수사 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했다.

구속된 '프로듀스X101' 총괄 CP(왼쪽)와 담당 PD.

수사 결과는 참혹했다. 경찰은 '프로듀스X101' 사무실과 문자 투표 데이터 보관 업체 등을 압수수색했고 제작진의 휴대전화에서 조작이 언급된 녹음 파일을 발견했다. '프로듀스 101' 시즌 1을 비롯해 시즌 2, '프로듀스 48', '프로듀스X101'까지 연출하며 '프로듀스' 시리즈를 이어온 안 모 PD와 총괄 프로듀서 김 모 CP는 구속됐다. 안 PD는 '프로듀스'의 새로운 시즌을 론칭할 떄마다 제작 발표회에서 '악마의 편집'이나 '피디 픽(PICK)'(PD가 특정 연습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밀어주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던 인물이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프로듀스X101'과 '프로듀스 48'에서 투표 조작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슈퍼스타K'부터 '쇼 미 더 머니', '고등래퍼', '프로듀스 101' 시리즈까지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서바이벌 프로그램 명가'라 불렸던 Mnet은 심각한 이미지 훼손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이전까지 방송됐던 프로그램에서도 조작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고, Mnet을 '조작 방송사'라 조롱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오랜 시간 쌓아온 명성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또 다른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아이돌학교' 역시 결과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경찰 수사도 확대됐다. 압수수색만 모두 6차례에 걸쳐 이뤄졌고 관련자들 사이에 금전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도 조사되고 있다.

■ 기울어진 운동장… '공정성' 훼손에 분노한 대중

특히 이번 논란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건 '공정한 경쟁'이 기반이 돼야 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태경 의원은 '프로듀스X101'의 생방송 투표 조작을 "명백한 취업 사기이자 채용 비리"라고 정의했다. 비록 아이돌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실업난과 기울어진 운동장에 좌절한 청년층은 이번 사안에 깊은 공감을 보이고 있다. 어떤 누리꾼은 "입시생으로 따지면 명문대학교에 비리로 들어간 것과 다름 없지 않느냐"고 일침했다.

'아이돌학교'에서는 출연자 이해인이 목소리를 냈다. 이해인은 '아이돌학교' 출연 당시 독보적인 인지도와 인기로 데뷔할 것이 유력했으나 최종 선발에서 탈락,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던 인물이다. 당시 '아이돌학교' 갤러리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해인에게 투표했다고 인증했는데, 실제 이해인이 얻은 투표 수가 시청자들이 인증한 것에 미치지 못 한다며 투표 결과가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이해인은 지난 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조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아이돌학교'에 지원한 3000명 가운데 41명이 뽑혀서 방송에 나왔는데, 이들이 모두 1차 오디션에 임한 건 아니었다"고 폭로했다. 또 미성년자 출연자들을 데리고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적법한 촬영 시간도 준수하지 않았으며 생방송 미션에서 탈락한 뒤에는 자신을 떨어트린 이들에게 "제작진이 너를 반대했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주장했다.

시청자들에겐 '여러분의 손으로 여러분의 아이돌을 만들라'고 방송 시청과 투표를 독려하고, 출연자들에겐 공정한 기회의 장을 마련할 것처럼 해놓곤 뒤에선 운동장을 기울어지게 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아닌 제작진의 의견을 담아 결과를 조작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의당 유상진 대변인은 6일 브리핑을 열고 "해당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를 조작해 국민을 속이고 연습생들의 꿈을 이용해 사기극을 벌여왔다는 의혹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겉으로는 투표라는 공정한 과정을 내세웠지만 이미 내정자를 정해졌고 다른 연습생은 기업의 파렴치한 장삿속에 이용된 것"이라면서 "추가 수사를 통해 모든 혐의를 낱낱이 밝히고 이에 걸맞은 엄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1일 컴백 앞둔 아이즈원.

■ 조작 논란에 직격탄 맞은 아이즈원·엑스원 어쩌나

이번 투표 조작 논란의 직격탄을 맞은 건 오는 11일 새 앨범 '블룸아이즈'를 발표할 예정이었던 아이즈원이다. 아이즈원은 지난 해 방송된 '프로듀스 48'을 통해 데뷔한 그룹으로 한국과 일본 멤버들이 섞여 있다. 본래 일본에서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던 이들이 멤버로 대거 합류, 일본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높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정규 앨범을 내고 연말 활동을 화려하게 장식할 것으로 기대됐던 아이즈원은 안 PD가 '프로듀스 48'에도 조작이 있었다고 시인하면서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앨범 발매 일정 역시 강행에서 연기로 바뀌었고, 신곡 무대를 최초로 공개하려던 쇼케이스도 자연히 취소됐다.

여기에 정확히 어떤 조작이 있었는지 여부가 밝혀지지 않으면서 일부 멤버들이 악플러들의 저격의 대상이 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조작이 의심되는 멤버들의 명단이 돌고 있고, 아이즈원을 일컬어 '위조원', '아위조원'이라 조롱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1년 여의 활동을 마치고 앞으로 1년 5개월 여의 활동 기간을 남긴 아이즈원이 논란 속에서 프로젝트 기간이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염려하는 팬들이 많다.

'프로듀스X101'으로 데뷔한 엑스원.

조작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프로듀스X101' 출신 엑스원이 입은 타격이야 말할 것도 없다. 생방송 문자 투표 결과의 원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시청자들의 요구는 아직 들어지지 않은 상황. 만에 하나 순위에 변동이 생겨 떨어져야 했을 연습생이 엑스원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엑스원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안 PD가 '프로듀스 101' 시즌 1, 2은 조작이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통해 데뷔한 아이오아이, 워너원까지 덩달아 소환돼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아이오아이, 워너원 출신들은 2019년 현재 가요계를 짋어지고 가는 대세 스타들로 자리매김한 상태라 연예계 전반에 걸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아이오아이의 경우 재결합 관련 논의가 꾸준히 나오던 상태라 이 같은 논란이 더 뼈아프다.

Mnet이 입은 타격은 말할 것도 없다. 조작 논란이 있은 후 방송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의 경우 파이널 생방송 경연 내내 MC가 계속 "문자 투표는 제 3자 입회 하에 집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란 이유로 혹시나 이번에도 투표 조작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시청자들이 있다는 걸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업무 방해, 배임수재 혐의를 받고 있는 안 PD 외에 상급자인 책임 PD까지 구속되면서 경찰이 Mnet의 더 윗선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프로듀스X101' 조작 의혹 고소인도 "(CJ ENM이) 관리 감독을 분명히 했을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수사를 끝낼 게 아니다"며 CJ ENM 전반에 대한 수사를 요구한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안에는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들까지 연루됐다. 안 PD가 연예 기획사 관계자로부터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은 정황이 확인된 것. 경찰은 투표 조작에 복수의 인물이 가담한 것으로 보고 CJ ENM 사무실을 비롯해 스타쉽, 울림, MBK 엔터테인먼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청소년들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바른 길을 안내해 줘야 할 연예 기획사에서 이런 부정한 일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K팝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프로듀스X101' 투표 조작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 조작은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고 101명 연습생의 땀과 눈물을 농락한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Mnet은 또 한 편의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 '월드 클래스'를 론칭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저조한 관심은 Mnet과 공정치 못 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이 활약하는 K팝계에 대한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 '프로듀스 101' 시리즈 최종 선발 멤버 연도별 데뷔 현황 **

2016 '프로듀스 101' 시즌1 ->아이오아이
2017 '프로듀스 101' 시즌2 ->워너원
2018 '프로듀스 48' -> 아이즈원
2019 '프로듀스X101' -> 엑스원

사진=Mnet 제공, OSEN, 오프더레코드, 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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