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윤희에게’는 윤희(김희애)가 딸과 함께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는다. 여느 멜로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만을 기억하는 이라면 ‘윤희에게’의 표현 방식에 생소함을 느낄 수 있다. 남녀의 사랑은 아닌 동성의 사랑을 담지만, 그 방식이 결코 자극적이거나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저 물 흐르듯 잔잔한 전개와 따뜻한 감성이 돋보인다.

영화 속 윤희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인호)과 헤어진 후 딸 새봄(김소혜)과 단둘이 살아간다. 수능을 마치고 대학진학만을 앞둔 새봄은 윤희에게 그리 다정한 딸은 아니다. 별다른 말없이 살아가는 두 사람. 어느 날 새봄은 우연히 윤희에게 온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편지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일본에 살고 있는 쥰(나카무라 유코). 새봄은 쥰이 엄마의 첫사랑이라는 걸 짐작하게 되고, 윤희에게 단둘이 여행을 떠나자고 권한다. 윤희는 새봄과 함께 한겨울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첫사랑을 찾아간다.

‘윤희에게’는 엄마와 딸의 동행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사랑을 찾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삶을 잊은 채 살았던 윤희가 자아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 '윤희에게' 리뷰.

어린 시절부터 오빠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대학도 포기한 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았던 윤희. 동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오빠가 소개해준 남자와 바로 결혼해야 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그런 윤희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용기를 갖고 성장하며 세상 앞에 나서는 모습이 잔잔한 감정의 변화로 표현된다. 윤희는 곧 남성 중심 사회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당시 시대의 여성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임대형 감독은 “한국과 일본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 질서가 공고하게 성립된 나라”라며 “동아시아 여성들이 연대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동성 간 사랑을 다룬 퀴어물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영화의 장치로 사용된 소복한 눈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흐름이 인상적이다. 마치 일본영화 ‘러브레터’(1999)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잔잔한 영화지만 곳곳에 웃음을 자극하는 장면도 있다. 윤희의 첫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의기투합한 새봄과 그의 남친 경수(성유빈), 윤희와 새봄의 티격태격하는 모습, 새봄과 마사코(키노 하나)의 첫 대면 등이 대표적이다.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멜로의 귀재로 평가받는 김희애는 이번 영화에서도 설득력 있는 감정 연기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많은 것을 상실한 윤희가 일어나는 과정을 다채로운 연기로 표현한다. 힘을 주지 않은 담담한 연기가 영화에 힘을 불어넣는다. 데뷔 후 첫 스크린 주연으로 나선 김소혜의 연기는 다소 아쉽다. 고르지 못한 발성이 영화의 몰입을 흐린다.

다만 일관되게 흘러가는 잔잔한 전개가 다소 지루함을 자아낸다. 윤희의 사랑과 성장을 다루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영화이지만 큰 파동이 없는 흐름이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러닝타임 105분. 14일 개봉. 12세 관람가.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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