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데뷔 35년차임에도 멜로물 출연이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있다. 김희애의 이야기다. 드라마 ‘밀회’(2014), ‘끝에서 두번째 사랑’, 영화 ‘쎄시봉’(2015) 등 여전히 멜로물에서 활약 중인 김희애가 새 영화 ‘윤희에게’(14일 개봉)를 들고 돌아왔다. 이 영화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룬 퀴어물이기도 하다. 한국 여성과 일본 여성의 사랑을 내세운 작품에서 김희애는 특유의 감정 연기로 캐릭터를 온전히 표현했다. 한 여성의 상실감과 좌절, 그리고 다시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관객의 호평을 이끌었다.

- 다른 작품들과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윤희에게’를 보고 어땠나.

“우리가 추구했던 생각과 가치를 관객들이 같이 느낄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런데 저보다 더 잘 이해해준 것 같아서 놀랐다. 뭔가 나와 제작진의 마음을 읽어준 것 같아 위로가 됐다. 사실 퀴어코드가 있고 배경이 일본이라 그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했는데 영화 자체의 평가가 좋았다. 어떤 사랑이라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영화라는 평가에 기분이 좋았다. 내가 너무 말초적인 평가에 신경 쓴 것 같다.”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려 출연하게 됐나.

“사실 시나리오가 텅텅 비어 있으면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굉장히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마음을 순수하게 통찰했다고 할까. 아무렇지 않은 톤으로 써 내려간 글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사나 장면보다도 영화의 톤도 좋았다.”

-참고할 만한 퀴어영화를 봤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다른 멜로물을 많이 봤다.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들을 많이 찾아봤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캐릭터에 최대한 집중하며 연기하려고 했다. 그래야 보는 관객들도 오그라들지 않고 캐릭터에 녹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멜로 상대인 쥰(나카무라 유코)을 마주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윤희의 감정은 내레이션으로 표현될 때가 많은데.

“혼자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라 힘들었다. 몸은 힘들더라도 이 인물의 히스토리가 나와야 감정연기가 편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윤희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혼자 있는 인물이다. 마음속으로 혼자 워밍업을 유지하고 있어야 해서 힘들었다. 너무 중요한 장면인만큼 큰 부담을 느꼈다.”

-딸 새봄을 연기한 김소혜의 연기는 어떻게 봤나.

“참 좋았다. 연기를 하는 뚝심이 느껴졌다. 연기라는 게 나이 많다고 잘 하는 건 아니다. 공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거다. 나는 어릴 때 일에 대한 프로페셔널한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김소혜는 프로페셔널했다. 저렇게 일찍 깨우친 걸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윤희에게’는 여성 중심 서사를 다뤄서 주목 받기도 했다. 실제로 배우로서 체감하기도 했나.

“예전에 커트머리를 해서라도 남성 캐릭터라도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해야 할 작품이 많지 않아서였다. 영화계도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차곡차곡 쌓여서 큰 변화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연기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랬으면 한다. 최근에는 ‘82년생 김지영’을 극장에 가서 봤다. 억지로 어떤 걸 강요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느껴져서 감동적이었다. 이런 변화된 작품들이 나오는걸 보면서 살만한 세상으로 점점 변해간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로 ‘허스토리’ ‘사라진 밤’은 공통점을 찾기 힘든데 어떤 작품에 끌리나.

“ 재미, 가치, 캐릭터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 어떤 작품의 기준 이상이 된다면 선택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나 마냥 작품을 기다릴 순 없으니까. 말이 되지 않는 작품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본다.”

-여전히 멜로하면 김희애라 할 정도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는데.

“멈추면 안 된다. (웃음) 앞으로도 계속 출연해야 할 것 같다. 딱히 자부심이라고 느끼진 않는다. 어떤 작품이든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원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평소에는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내 ‘소확행’이 일과를 일찍 끝내고 저녁을 준비하는 거다. 약간 조명을 어둡게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고 넷플릭스를 보면 너무 행복하다. 아늑하다. 최근에는 티모시 샬라메가 눈에 들어와서 출연작들을 찾아보고 있다. ‘쓰리 빌보드’에 나온 샘 록웰도 좋아한다.”

-배우로서 김희애를 자극하는 게 있다면.

“표면적인 건 다른 사람의 연기인 것 같다. 또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연출되지 않은 조명에 단촐한 삶이 담긴 ‘인간극장’을 보는 게 좋다. 그게 10년이 되고 인생이 되듯이 연기도 모든 게 모아져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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