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동호 기자] 이달 초 여의도 증권가의 큰 별이 졌다. 지난 6일 돌연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인이 된 권 회장은 온라인증권사인 키움증권을 국내 온라인 주식시장 점유율 1위 증권사로 성장시킨 증권가의 존경받는 최고경영자(CEO) 중 1명이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권 회장은 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MIT)에서 기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제 21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를 거친 기술관료 출신이다.

이후 2000년 키움증권의 최대주주인 다우기술 부사장으로 영입되면서 여의도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키움인베스트먼트, 한국아이티벤처투자 사장을 거쳐 2009년 4월 키움증권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대표이사 선임 후 2번 연속 연임에 성공하면서 키움증권을 국내 온라인 1등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어 2018년 1월 금융투자협회 회장에 선출되면서 증권업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운전기사와 기자 등에 대한 막말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권 회장의 즉각적인 사퇴와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요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기사에는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권 회장은 즉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며 임직원 처우개선과 갑질금지 등을 약속했다. 또한 향후 거취에 대해 모두의 뜻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협회 이사회는 권 회장에게 회장직을 유지해 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지난 6일 권 회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남에 따라 회장직은 공석으로 남게 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존경받던 CEO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업계 일각에선 사적인 대화를 녹취해 그 중 일부만을 공개한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적으로 나누는 대화가 모두 공개된다면 누구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누가 권 회장의 녹취록을 공개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권 회장과 관련된 기사에 쏟아진 누리꾼들의 막말, 폭언 등도 문제다. 앞서 세상을 떠난 연예인 설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는 공인에 대한 폭력이며, 일종의 갑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지속적인 악플 등에 시달려 온 설리는 지난 10월 스스로 삶을 버렸다.

권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난 6일 오후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검색어 순위에 권 회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또한 고인의 부고를 전하는 뉴스에도 수많은 악성댓글이 달렸다.

다음은 이 같은 악성댓글의 폐해를 막기 위해 지난달 31일을 기점으로 연예섹션 뉴스에 댓글 기능을 삭제키로 했다. 또한 연내에 인물 키워드와 관련 검색어도 없애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고인이 된 권 회장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악성댓글은 연예섹션 뉴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보다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는 악플로 인한 심각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방치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악성댓글 감시 서비스를 최근 도입했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세계의 선진국들 중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제는 본격적인 논의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명예훼손으로 인한 민형사적 규제와 모욕죄에 의한 민형사적 규제가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벌금형에 처해진다"며 "규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몇년간 악플 때문에 벌어진 사회적 해악을 여러 사건으로 충분히 목격했고,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사회적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이제는 실효성 있는 규제 방식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달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설문조사 전문기관 두잇서베이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중 7명이 악플 근절방안 및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남녀 3162명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선 댓글 작성자의 아이디와 IP를 공개하는 수준의 '인터넷실명제의 준 도입'에 76%가 찬성했다. 또한 댓글 작성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인터넷실명제 도입'에도 71%가 찬성 의견을 보였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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