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겨울왕국2' 포스터./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겨울왕국2’의 흥행세가 심상치 않다. 개봉 4일 차에 누적 관객 수 400만 명(24일 기준)을 돌파하고 지난 23일 하루 166만 명을 동원하는 등 ‘어벤져스’ 시리즈와 같은 흥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개봉 열흘 전부터 사전예매량만 110만 장을 돌파하는 등 ‘겨울왕국2’의 흥행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21일 개봉한 ‘겨울왕국2’가 개봉 첫 날 확보한 스크린수는 2343개, 상영점유율 63%를 기록하면서 국내 영화인들은 스크린 독과점을 지적했다.

■ ‘어벤져스’ 시리즈급 스크린 확보..영화인 규탄

정지영 감독./한국스포츠경제DB

사실 대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계속돼온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한국영화계에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로 남아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초 개봉한 천만영화 ‘극한직업’(1553개, 개봉 첫 날 기준)을 시작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2760개), ‘기생충’(1783개) 등이 다수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이때마다 일각에서는 늘 독과점 문제를 지적했지만 별다른 개선 없이 지나왔다.

그러나 ‘겨울왕국2’ 개봉과 동시에 영화인들은 독과점의 우려와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긴급 기자회견을 22일 열고 관심을 촉구했다.

‘영화다양성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반독과점영대위)를 구성한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제작자협회회장, 독립영화협회, 반독과점영대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은 독과점 해소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지영 감독은 ‘겨울왕국2’의 개봉으로 인해 ‘블랙머니’가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실제로 ‘블랙머니’는 ‘겨울왕국2’ 개봉 전날까지 1141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다 개봉 당일 852개로 스크린수가 감소했다.

정지영 감독은 “‘블랙머니’가 극장에서 안 해준다고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해명을 하는 것”이라며 “이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알게 해야 한다. 어제 날짜로 극장좌석 수가 90만 장에서 30만 장으로 줄었다. 스코어는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줄었다”라고 성토했다.

정 감독은 또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과의 일화를 공개하며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대박을 터트린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크린을 독점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봉준호 감독한테 문자를 넣었다. ‘축하한다. 하지만 이번 상영에 스크린을 3분의 1을 넘지 않게 해준다면 한국영화계도 바뀌고 정책당국이 깨달을 거다’라는 문자를 넣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봉 감독이 ‘배급에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50%이상 안 넘게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제도적으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인들은 단순히 ‘겨울왕국2’만의 스크린 독과점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인 규제가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독과점영대위 측은 “‘겨울왕국2’는 좋은 영화다. 그런데 그렇게 단기간 내에 스크린을 독과점하면서, 다른 영화에 피해를 주면서 빨리 매출을 올려야 하겠는가”라며 “초반에 독과점을 하긴 했지만 ‘기생충’도 53일에 천 만을 봤다. 독과점을 안 한 ‘알라딘’도 50일을 넘어 천만을 돌파했다. 그런가 하면 11~12일에 천만 가는 영화도 있다. 그런 걸 지양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관객들, 자유시장 논리 제기하기도

영화 '겨울왕국2' 스틸./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그러나 국내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자유시장 논리를 내세우며 독과점 제기를 비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겨울왕국2’의 상영을 제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겨울왕국2’와 대결을 피하기 위해 국내 영화들은 개봉일을 연기하면서까지 눈치싸움을 했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 중인 기타 영화들은 이미 개봉한 지 오래된 작품이거나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작품인 탓에 ‘겨울왕국2’의 독과점을 비판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특히 전작에서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 만큼 ‘겨울왕국2’에 관객들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는 현상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관객들의 관람 욕구와 스크린 독과점을 규탄하는 국내 창작자들의 이견은 쉽게 좁힐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관객들의 수요에 따라 스크린을 배정해야 하는 극장까지,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매번 제기되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크린 상한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승자독식, 약육강식이 당연한 것이라면 우리 삶과 우리네 세상만사는 어떻게 되겠나. 마땅히 개입해야 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스크린 상한제 도입이 가장 바람직한 답안이라고 볼 순 없지만 관객, 창작자, 극장이 모두 공정할 수 있는 방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8년 소비자행태조사에 따르면 ‘스크린 독과점 현상으로 원하는 영화를 보지 못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평균 30% 가량이 ‘그렇다’고 답했다. 19세~24세 남성은 37.2%, 19세~24세, 25세~29세 여성은 각각 49.6%, 50.1%가 스크린 독과점 현상으로 원하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