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브랜드의 영속성
회장님차에서 시작해 아빠차, 오빠차로 선택연령대 낮아져

 

더 뉴 그랜저 주행사진 / 제공=현대자동차

[한스경제=조윤성 기자] 최근 출시한 ‘더 뉴 그랜저’가 연말 자동차시장에 돌풍을 이끌고 있다. 지난 19일 국내시장에 출시한 ‘더 뉴 그랜저’는 사전계약 기간인 4일부터 18일까지 15일 동안 역대 최고 기록인 3만2179대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심지어는 이달 중반까지 승승장구하던 경쟁사나 수입차의 판매실적까지 끌어내리면서 그랜저가 돌풍을 이끌고 있다.

그랜저는 국내시장에서 매년 10만대 이상을 판매해 온 베스트셀링카로 자리매김해 왔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선보이기 전까지는 국내 주요기업 임원들이 타는 ‘성공한 기업인의 카’라는 이미지를 갖기도 했다.

그랜저는 제네시스 G80시리즈가 나온 이후로 국내 기업에서 주니어급 임원들이 주로 선호하는 차량으로 손꼽힌다.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와 맞먹는 크기로 각종 편의사양까지 더하고 있어 수입차시장 대항마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차가 그랜저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해 장사를 그랜저 하나도 끝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현대차가 상반기 실적 부진에 허덕이더라도 하반기에 그랜저가 ‘한 몫’ 해줘 무난히 한 해를 넘을 수 있었다는 업계의 관측도 나온다.

더 뉴 그랜저 실내 공간 / 사진=이정민기자

그렇다면 ‘왜 그랜저는 상반기가 아닌 하반기에 출시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의문에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연말 임원인사 때문이다. 삼성, LG, SK 등 주요기업의 인사가 예정돼 있어 사전계약 기간에 주문된 물량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연말에 들어서면 현대차는 이들 주요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법인영업 담당이 혹여나 기아차 K7이나 타사 브랜드에 고객을 뺏길세라 영업의 고삐를 바짝 취하는 모양새다. 우스갯소리로 10월까지 실적이 하나도 없어도 남은 11월과 12월 2개월 동안에 수백 대씩의 판매만 올리면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대차는 부쩍 커진 렌탈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롯데렌탈, SK렌터카, AJ렌터카 등의 렌탈업체를 이용하면 그랜저를 월 50만원대에도 탈수 있어 고객들의 선호가 높다. 비용혜택이 있는 렌터카를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그랜저의 판매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주요 렌터카 업체는 미리 인기사양을 선주문 해 물량을 확보해 놨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하반기 렌탈시장이 그랜저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1986년 7월 선보인 1세대 ‘그랜저’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모델이다. 사진=현대차

그랜저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과거 1세대부터 이어져 온 테일램프 디자인이 유독 강조되고 남아 있다는 게 특징이다. 현대자동차의 오너가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랜저의 아이덴티티로 남은 것은 테일램프 중간에 긴 바 형태의 가로선이 대표적이다. 3세대 그랜저에서만 빨간색 긴바 형태의 디자인이 스테인리스 재질로 바뀌었을 뿐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 출시된 신형 그랜저는 테일램프 디자인에 변화를 줬다. 이전 모델에서 점등이 되지 않던 가로형태의 바 디자인에 LED를 채택해 존재감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동안 튜닝을 통해 한번쯤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아마도 구매연령대의 변화로 인해 경쟁 브랜드 대비 존재감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1986년에 출시된 1세대 모델이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하면 최근 출시 모델은 운전자의 존재감을 극대화시켜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듯 더 뉴 그랜저의 사전계약 고객 중 30~40대 비중이 53%에 달해 젊은 층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상태다. 과거 40~50대와 50~60대가 선호하던 그랜저는 이미 사라지고 첨단 사양과 흡사 수입차와 비슷한 디자인을 갖춰 젊은 층의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됐다.

2005년 출시된 4세대 ‘그랜저(TG)’는 견고한 안락함(Solid Comfort)’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독자 기술로 개발된 고성능의 엔진이 탑재되는 등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현대차

마치 과거 대형세단이 없던 시절에 출시된 1세대 그랜저가 ‘정주영 회장님의 차’였다면 2세대에서 5세대까지는 ‘정몽구 아빠차’, 6세대 이후로는 ‘정의선 오빠차’로 변모하는 듯한 모습이다. 현대차가 변모하는 모습에 그랜저가 투영된 각기 다른 세대별 트렌드가 녹아있다.

한마디로 제네시스로 옮겨가기 어렵거나 패밀리세단을 선호하는 연령대가 그랜저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랜저의 경쟁모델 중에 수입세단을 고르게 되면 가격은 2배지만 선택옵셥은 크게 많지 않아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합리적 소비를 위해 그랜저로 몰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필자는 과거 2007년식 그랜저TG모델을 선택한 적이 있다. 날렵한 선에 매끄러운 디자인에 매료돼 그야말로 ‘돈질’을 했었다. 후회는 없었다. 오랜 기간 필자를 행복하게 해 준 ‘자부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과거 2세대(뉴 그랜저)와 3세대(XG)를 선호하셨고 이어서 필자가 그랜저를 선택한 셈이다. 그랜저는 이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모델인 셈이다.

현대차가 국내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보인 차량 중에 남아있는 브랜드도 그랜저와 더불어 쏘나타가 유일하다. 그만큼 현대차의 오랜 아이덴티티가 담긴 헤리티지 모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앞으로 세대가 거듭할수록 그랜저는 7세대와 8세대, 그 이후의 모델도 선보이겠지만 현대차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대표브랜드로 남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車談(차담)은 오랜 기간 자동차를 타보고 느낀 점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조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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