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금융당국, 소비자 보호 위한 강력한 규제안 추진...은행 등 금융권은 '반발'
지난 14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에 금융업계가 반발하고 있다./픽사베이 제공

[한스경제=김동호 기자] “감사원에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고용보험기금 등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한다.”

최근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겪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피해자들이 금융 관련 정부 감독기관들에 대한 공익감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금감원에는 지난달 펀드환매 중단을 선언한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분쟁조정 신청도 다수가 접수된 상태다.

이에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등 금융 감독당국은 물론 국회와 정당 등 정치권도 앞다퉈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업계에선 감독당국과 정치권의 대책이 소비자 보호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장 자체를 죽이는 과도한 규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성난 피해자들을 달래기 위한 선심성 공약의 남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금융위원회에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범위와 관련된 건의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시중은행의 신탁담당 임원들은 지난 25일 금융위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주가연계증권(ELS)을 은행지점의 판매금지 대상으로 지정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앞서 14일 금융위와 금감원이 발표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에 대한 금융업계의 의견이다.

금융위가 발표한 개선방안은 대규모 피해자를 발행시킨 DLF 사태에 대한 후속조치로, 공모펀드 판단의 기준을 강화하고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은 파생상품 내재 등의 이유로 투자자들의 상품 이해가 어렵고, 20~30% 이상 원금손실이 날 수 있는 상품이다. 이 같은 상품은 은행 지점의 판매가 금지된다.

이에 대해 시중 은행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문제가 된 해외금리 연계 DLF의 경우 불완전 판매가 문제가 된 것이지, DLF라는 상품 자체의 문제는 아니란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은행과 증권사에서 판매한 DLF는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줬다.

은행들은 고위험 ELS가 편입된 주가연계신탁(ELT)을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공모형 신탁 상품의 판매를 허용해 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ELS 투자자의 경우 대다수의 투자자가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투자에 나서고 있으며, 은행들 역시 그간의 상품판매 경험 등을 통해 위험상품 선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지정에서 설정하고 있는 원금손실률 20%도 너무 과도하단 주장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식시장의 경우 하루 주가변동 상하한가 제한이 30%로, 상한가와 하한가를 모두 기록할 경우 최대 60% 가까운 변동성이 주어진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20% 손실가능성을 이유로 상품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너무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은행에서 판매한 ELT의 대부분이 공모형 ELS를 포함한 상품으로, ELT의 시장 규모는 지난 상반기말 기준 40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약 금융위의 규제안이 지금 상태로 실행될 경우 은행들의 입장에선 막대한 시장이 사라지는 셈이다. 금융소비자 역시 상품 가입을 위한 쉬운 창구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 경우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감독당국의 입장은 완고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있었던 '동산금융 혁신사례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신탁시장이 고사할 것이란 은행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신탁 상품을 봐주는 일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포함되는 공모형 신탁상품을 판매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은 위원장은 또 "얼마 전까지 잘못했다고 사과하던 은행들이 맞나"면서 "마치 은행이 피해자처럼 된 것 같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금융위의 완고한 자세에 은행 등 금융권은 고민에 빠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손실 위험이 있는 위험한 금융상품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판매한 일부 은행의 성과주의가 문제지,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이미 극단적인 위험 회피 속에서 수많은 기회를 놓친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이 전혀없는 중수익 금융상품은 현실에 없다"며 "이는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뿐만 아니라 상품에 투자하는 소비자도 알아야 할 사실"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26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되던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시키는 내용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선 6대 판매규제를 어긴 금융사에 대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은 향후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며,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되면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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