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연합뉴스

[한스경제=황보준엽 기자]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한 자료를 일부를 왜곡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일 ITC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달 5일 "SK이노베이션이 소송 제기 전후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포렌식 명령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등 법정모독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는 결론으로 조기에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은 이 요청서에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는 여러 근거들을 담아 제시했다.

이 가운데 LG화학이 소송을 제기한 4월29일 다음 날인 30일 새벽에 'FW : [긴급] LG화학 소송 건 관련'이란 제목의 이메일 원문과 영문번역본이 포함됐다.

이 이메일에는 '최대한 빨리 LG화학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는 내용이 쓰여있다.

LG화학은 이를 토대로 "소송 제기 다음 날에도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메일의 전문과 원문을 보면 LG화학의 주장처럼 전사적으로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내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메일은 LG화학의 해석대로 전사적 자료 삭제가 아닌 대응 방안 의견을 요청하는 내용이 주 내용이다.

그럼에도 LG화학이 ITC에 제출하고, 언론 보도자료에 공개한 이메일에는 원문의 내용(사업팀 의견 취합)은 누락됐다.

따라서 ITC에 제출된 증거자료만 본다면 본사에서 긴급히 자료를 삭제하라고 보낸 메일을 팀장이 받고 해당 팀원들에게 전달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은 LG화학이 제출한 요청서를 받은 지 10일 만인 지난달 15일 "LG화학의 요청대로 SK이노베이션 패소로 조기에 판결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조사국이 LG화학의 요청 10일 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점 등을 보면 LG화학이 제시한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소송이 제기된 후에 회사가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과 직원 A씨 개인의 행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때문에 LG화학이 자사에 유리하게 메일 원문을 뺀 화면으로 편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살 수 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ITC 디스커버리(증거개시)에서 중요 정보를 담고 있을 만한 문서를 제출하지 않고 누락해 ITC로부터 포렌식 명령을 받았다. 여기에 포렌식 명령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지적했다.

그러나 LG화학이 '소송 이후에도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근거로 제시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면 LG화학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주장에 대한 추가 자료를 지난달 19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0일에 LG화학의 조기패소 판결 요청에 대응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답변서는 증거인멸은 사실이 아니며 조기패소 판결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담은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ITC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입장, 불공정수입조사국의 의견서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결정을 내리게 된다. LG화학의 요청대로 SK이노베이션 패소라고 조기 판결을 하면 통상 절차인 예비판결 단계까지 가지 않고 최종 결정으로 이어진다.

황보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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