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의혹 제기한 박경 트위터 글.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음원 사재기' 논란이 가요계에서 다시 거세게 일어났다. 최근 블락비 멤버 박경이 바이브, 송하예, 장덕철 등 몇몇 가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이름이 거론된 가수들은 잇따라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며 박경에 대한 법적 대응 절차를 밟을 것이라 알렸다. 하지만 이들과 별개로 박경의 폭로 이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마미손, 성시경 등 여러 가수들이 사재기 의혹에 힘을 보태면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공정한 음원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대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음원 사재기. 정말 존재하고, 그 실체를 잡을 수 있을까.

■ "브로커에게 실제 제안을 받았다"

이제 음원 사재기는 누구도 '없다'고 단정을 지을 수 없게 됐다.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실제 자신들이 브로커에게 음원 사재기와 관련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지난 달 26일 방송에서 "지난 해 앨범을 냈을 때 중간업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때 그 쪽에서 '너희도 뜰 때가 돼서 약간 맥락이 있다. 연막을 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냥 (음원을) 사면 안 되니까 페이스북에 '소름돋는 라이브' 같은 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서 처음 듣는 노래를 올려준다. 그것을 하고 새벽에 (음원을) 산다. 나중엔 '거기에 올렸는데 대박이 난다'고 말한다"고 이야기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또 중간업자가 다수의 페이스북 계정을 보여줬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사재기 제안 받은 적 있다고 고백한 이승환.

이승환 역시 지난 달 28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에 출연해 "브로커에게 사재기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브로커는 음반 업계에 소문이 나 있다"면서 "내게 직접 제안을 한 건 아니고 측근을 통해 연락한 적도 있다. '순위를 올려줄 수 있다'고 했고, 조건으로 들어온 액수는 몇 억 원 대였다"고 설명했다.

직·간접적으로 이런 일을 경험한 가수는 또 있다. 성시경은 지난 달 27일 방송된 KBS 해피FM '매일 그대와 조규찬입니다'에 출연해 "요즘 음원 사재기 이야기가 많은데 실제로 들은 얘기가 있다"면서 "요즘에는 전주도 없어야 하고 간주도 없어야 된다고 하더라. 그런 회사에서 '전주를 없대고 제목을 이렇게 하라'는 식으로 작품에도 관여를 한다더라. 아는 형이 곡을 준 상황인데 '가사를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겠느냐'는 얘기를 해서 꺼지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그런 게 실제로 있긴 있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음원 사재기 중간 업자들은 페이스북 등을 사재기를 숨기기 위한 연막으로 사용하며, 이 과정에서 노래 제작에도 적극적인 관여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사실 '음원 사재기'는 가요계에서 하루이틀 논란이 됐던 일은 아니다. 지난 2013년 SM·JYP·YG엔터테인먼트와 스타제국 등은 손을 잡고 사재기 브로커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끝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또 지난 해 닐로라는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을 이루면서 다시 사재기 논란이 일었다. 당시 닐로는 발라드 곡인 '지나오다'로 멜론 50대 선호 차트에서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눌러 더욱 눈길을 끌었다.

사재기 의혹 받았던 닐로(왼쪽)와 숀.

결국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진상 조사에 나섰으나 역시 결과는 '증거 불충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시 닐로의 '지나오다'와 숀의 '웨이 백 홈'이 다른 음원의 이용 패턴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이지 않은 건 사실이나 사재기와 팬덤 스트리밍 사이의 식별이 어려워 사재기 행위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론 이후 차트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여러 차례 발견됐다. 특히 올해 음원 사재기 논란이 이렇게 크게 터져나온 데는 예년과 달랐던 여름 차트에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청량한 사운드의 댄스 곡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달리 이번 여름엔 발라드가 강세를 보였다. 여자친구, NCT드림, 있지 등 많은 가수들이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현상이라 눈에 띄었다. 지난 해 비슷한 기간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에이핑크의 '1도 없어', 트와이스의 '댄스 더 나잇 어웨이' 등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었다.

업계에서도 사재기에 대한 이야기는 공공연하다. '사재기 의혹'을 받은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이용률이 낮은 늦은 오후부터 새벽 시간대에 폭발적으로 스트리밍 수를 늘려 차트에 안착하는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실제 (음원 사재기) 업자가 있다는 건 이 바닥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라면서 "'바이럴 마케팅'을 해주겠다고 접근, 음원차트 순위는 물론 검색어까지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거액을 요구하는 패턴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도 실체를 잡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 한 관계자는 "음원 사이트 입장에서는 이들이 (음원 사재기를 위해) 유료 회원 아이디를 대거 생성하고 스트리밍을 하면 오히려 이득이 된다. 그런데 굳이 스트리밍을 하는 아이디들을 식별해서 어떤 게 업자의 것이고 어떤 게 일반적인 이용자의 것인지를 분리하려고 하겠나. 업자는 '마케팅 효과'라 하고, 차트 쪽에서는 유료 회원의 스트리밍을 사재기로 간주하기 어렵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설명했다.

■ 문체부 등 정부 기관에서 나서야

결국 해답은 정부 기관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윤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사기업인 음원 사이트에서 굳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재기 근절을 위해 먼저 발 벗고 나서기는 힘들 거라는 것. 실제 '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여러 음원들은 음원 사이트의 이용량이 감소하는 새벽 시간에 오히려 스트리밍 양이 급증하는 패턴을 보인다. 음원 사이트 입장에선 음원 사재기가 오히려 이용량이 늘어나는 이득이 되는 일일 수 있다는 것.

이용자 수와 이용량이 음원 사이트의 힘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신뢰도 있는 음원 차트를 만드는 길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K팝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현 상황에서 빌보드, 오리콘처럼 공신력 있는 차트를 만드는 건 그만큼 가치 있는 일. 흔히 역주행을 기록한 여러 신인 무명 가수들이 덕을 봤다고 꼽는 '페이스북 마케팅'의 실질적인 효과나, SNS 이용자들이 어떤 식으로 음원 사이트에 유입되는가를 추적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차트의 움직임이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란 분석이다.

브로커와 접촉한 적이 있다는 한 관계자는 "A는 2000만 원씩 두 번을 바이럴 마케팅 비용으로 지불해서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고 하고, 작년에 B는 딱 5000만 원 써서 차트 역주행을 했다고 하더라. 이런 말을 들으면 혹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나"라면서 "그런데 솔직히 적은 돈이 아니고, 또 차트 상단까지 가기 위해서는 노래를 대폭 바꿔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1위를 만들기 위해 노래까지 업자들이 주무르는 상황은 좀 아니지 않나.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요 생태계는 결국 파괴되고 말 거라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를 해 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사진=박경 트위터, MBC 방송 화면 캡처, 리메즈엔터테인먼트, 디씨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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