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최지연 기자]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공효진이 KBS '동백꽃 필 무렵'에서 다시 한 번 변신에 성공했다. 산전수전 다 겪어 강단 있지만 억척스럽지는 않은 동백으로 분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이에 공효진은 "20년을 버티니까 또 새로운 국면에 서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멋있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풋풋한 사랑 얘기에 모두가 열광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다들 나 같구나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 처음 동백이를 접했을 때가 궁금하다.
"대본을 보면서 동백이가 제일 단순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캐릭터는 맛깔스럽게 사투리도 쓰고 그러는데 그에 비해 동백이는 플랫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장님 대사 읽으면서 흉내도 내보고 그랬다."

- 극중 동백은 미혼모였다. 연기 하기 어렵지는 않았나.
"필구 실제 나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보통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쑥스러움이 많아진다. 그래서 걱정했는데 필구는 정말 순수해서 다행이었다. 연기를 유연하게 할 줄 아는 아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준비한 대로 말고 다르게 해보라고 하면 보통 잘 못하는데 필구는 곧잘 해냈다. 강훈이가 필구라서 다행이었다."

- 그래도 모성애를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결혼도 안 했고 아직 엄마는 아니라서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어떤 느낌의 존재인지 잘 모르니까. 실제로 아이가 생기지 않고는 계속 잘 모를 거 같다. 친구들한테 설명해 달라고 해도 낳아봐야 안다고만 하더라."

- 그럼 향미와는 어땠나. 드라마를 보면 동백과 향미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동백과 향미는 어릴 때 보호받지 못했고 사랑 받지 못한 소녀들이다. 그런데 동백이는 옹산에 가서 사랑 받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필구가 있기도 했고. 종렬이 '나는 그 동네가 참 좋다'고 하면서 '옹산은 신기한 곳이야 밥 때 되면 아무데나 들어가서 밥 먹으면 돼' 라는 걸 듣고 동백이 옹산에 가게 되는데 그게 동백이한테 살아야 할 이유가 된 거 같다. 사람들한테 얄미운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계속 김치를 받으면서 그렇게 부대끼고 살았던 게 향미랑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계기 같다. 필구가 있으니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있고. 책임져야 하니까 달라진 거 같다."

- 향미 역할에 손담비를 추천했다고 들었다.
"작가님은 처음에 향미를 조금 더 어린 친구들을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대본이 나오면 나올수록 향미가 나보다 어리고 약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백이 약하디 약한 역할이라 오히려 향미는 비주얼적으로 화려하고 센 이미지였으면 좋겠더라. 까멜리아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오히려 향미가 주인 같고 동백이 알바생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손)담비가 실제로 맹한 부분이 있다. 옆에서 얘기하고 있으면 진짜로 듣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처음에 어려운 역 맡아서 잠도 잘 못 자고 고민 많이 했는데 10부에서 담비가 활약 하는 거 보니까 내가 다 감격스러웠다. 내가 칭찬 받은 거 보다 담비가 칭찬 받는 게 더 뭉클했다. 잘 해냈다."

- 시청률이 상당히 높았다.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15%나 16%정도, 진짜 많이 나오면 18% 정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시골 동네 사람들의 순박한 정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단순하게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결국은 돌고 돌아 사람 간의 정에 끌리는 것 같다. 모정, 이웃의 정을 다룬 얘기에 20대, 30대가 그렇게 울면서 공감한 게 신기하다.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다 똑같이 느끼는 게 정 인 것 같다. 인간의 기본 감성인가보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
"정말 많다. 하나를 꼽기가 어려운데 지금 기억 나는 대사는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하면서 '내 인생이 모래 밭 위에 사과나무야. 바닥에 움켜쥘 흙도 손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는데'라는 내래이션이 있다. 마지막에 '이제는 내 옆에서 항상 꿈틀댔을 모래알 바닷바람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이 보였다' 하는데 그 때 하늘이가 뛰어오는 장면이었다. 대본에 고딕체로 하늘이 보였다 하면 하늘이가 뛰어와서 '동백씨! 얼굴에 후레시 켰어요?' 한다. 그래서 내가 '용식씨를 만난 게 기적일까요' 하면 용식이 '동백씨는 그런 복권 같은 걸 믿어요?'라고 물어봐서 동백이가 '아니요 나는 나를 믿어요'라고 하는데 이 말이 좋았다. 이 대사를 보고 동백이는 이런 사람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럼 공효진에게 '동백꽃'이 남긴 건 무엇인가.
"데뷔하고 20년 동안 여러 작품 하면서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20년이나 했는데 많이 했지 싶고 사람들이 지겹겠지 했는데 이 드라마를 하면서 더 해 볼만 하구나, 내가 본 게 다가 아니고 내가 가진 감정이 다가 아니구나, 앞에 더 있구나 싶었다. 나 아니면 다 남 같다는 냉소적인 생각도 치유됐다. 사람들은 다 센 척 하지만 결국 사람 간의 온기에 무너지고 허물어지는구나 생각했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전이랑 다르게 '동백이 까불이한테 지지마요' 라고 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그냥 '좋아요', '예뻐요' 해주신 거랑 느낌이 정말 달랐다."

- 정말 정이 많이 들었을 거 같다. 이제 동백이는 어떻게 보내주려고 하나.
"여러 번 거듭해보니 캐릭터랑 이별하는 게 어떤 특별한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같다. 한 2주 정도 지나야 괜찮아진다. 끝나고 나서 정리하려고 하면 구멍을 파고 들어가서 껌껌한 상태가 돼 버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너지를 좀 채운 덕분인지 이별은 생각하지 말고 이룬 것만 생각 하려고 한다. 실제로 끝나고도 쫑파티부터 놀러 갔다. 화평인가 MT 가서도 인사하고 즐겁게 놀았다."

- 아까 데뷔 20주년이라고 했는데 돌아보면 어떤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한 게 동백이의 대사가 다 내 마음 같았다. 마지막에 동백이가 용식이랑 왕만두를 빚으면서 '행복은 왕만두를 빚는 거라고 생각해요'라면서 '점수가 어디 있어. 입맛대로 가는 거지. 다 대업이에요. 고춧가루 빻는 거, 만두 빚는 것도 대업이지. 행복은 자기 왕만두를 빚는 거라고 봐요'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맞는 말 같다.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소소하게 빚고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본인이 잘 아니까 결국 다 섞어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돌아보면 용감하게 하고 싶은 거 잘 하면서 밀고 나갔구나 싶다. 동백이라서 해야 하고 천만 영화라고 해야 되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거, 흥미로운 것들만 지금까지 해왔다. 안하고 싶은 건 안 했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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