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국내 주식에 122조원 투자...주주권 행사는 주주의 권리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픽사베이 제공

[한스경제=김동호 기자] 714조원, 8.92%.

우리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의 적립금 규모와 올해 운용 수익률을 나타내는 수치다.

3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국민연금 적립금은 작년말 대비 75조5000억원 가량 늘어난 714조 3000억원에 달했다. 연초 이후 운용수익률은 8.92%, 운용수익금은 57조4000억원(잠정)을 기록했다.

현재 기금 적립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융부문 투자자산 평가액은 713조원이며, 1988년 기금 설치 이후 연평균 운용수익률은 5.61%, 운용수익금은 351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이 중 약 40% 가량의 자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연금 자산의 17.1%가 국내 주식이며, 21.5%가 해외 주식에 투자된 상태다. 국내 주식 투자 자산의 평가액은 122조3000억원에 달하며, 올해 누적 수익률은 5.08%다.

하지만 국내 주식에 122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여전히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29일 개최한 제8차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국 의결하지 못했다. 기금위는 추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보완한 후 다시 논의키로 결정했다.

이는 재계의 반대를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선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결정이 선례로 작용해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면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켜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 역시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재무적 투자자로서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여야 한다”면서 “기업경영 개입을 줄이는 동시에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주주의 당연한 권리임과 동시에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질 연금 관리자로서의 의무라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주주권 행사가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연금 수익률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란 설명이다.

정재규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의결권(주주권) 행사는 주주로서의 당연한 권리 행사로서 바람직하다"면서 "또한 국민연금 가입자인 대다수 국민에 대한 기금관리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사회책임투자(SRI)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고 있고 기업의 미래가치를 향상시켜야 하는 공적 연기금으로서 사회적 책임 등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의결권 행사를 넘어 보다 능동적인 주주권 행사도 검토해야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공적 연기금은 의결권 행사를 보다 능동적으로 수행해 투자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제고하며 안정적인 수익률 확보가 가능하도록 하는데 노력을 다 해야한다"며 "필요하다면 민간 기관투자자와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공동대응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단순히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에 머물 것이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주주권 전반의 능동적 행사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직접적인 의결권 행사를 보류하고, 연금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분기별로 위탁운용사의 의결권 행사내역을 모니터링하고, 법령 위반시 위탁운용사 자금을 회수하는 등 평가의 불이익을 주며, 민형사상 조치를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주식매수청구권이 발생하는 인수합병(M&A) 안건과 중점관리사안,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 관련 기업의 주총 안건은 위임 범위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한국노총 등 시민단체, 노동단체들은 일제히 국민연금의 의결권 위임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을 대신 행사하게 될 위탁운용사 중 상당수가 대기업 계열사이거나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 29곳의 투자 대상기업 주주총회 안건 반대 비율은 평균 6.5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에 대한 반대율 조차 27.39%에 그쳤다. 이들 위탁운용사가 대기업 총수일가의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과 소유 혹은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에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기로 한 결정은 ‘독소조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위탁운용사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하는 의결권 위임 가이드라인을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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