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제안으로 시작…기업 홍보 보다 위로·희망 메시지 전달
교보생명이 광화문사거리에서 29년 째 광화문글판을 걸고 있다. /교보생명 제공

[한스경제=권이향 기자] 빽빽한 빌딩 숲 사이 광화문사거리 교보생명빌딩 외벽을 장식한 광화문글판. 연간 억대의 관리비용에도 29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4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광화문글판 교체 시 소요되는 비용은 1회 당 3500만원에서 4000만원 사이다. 해당 비용에는 글판에 새겨지는 글귀의 저작권료, 디자인, 설치비용 등이 포함됐다.

일 년에 4번 계절마다 글판을 교체하기 때문에 연간 최대 1억6000만원이 교체 비용으로 쓰인다. 교보생명은 광화문글판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29년 동안 글판을 걸고 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지난 1991년 1월 광화문글판이 탄생했다. 광화문글판의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초기 문안인 ‘훌륭한 결과는/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 ‘개미처럼 모아라/여름은 길지 않다’ 등은 대체로 계몽적이고 딱딱한 표어와 격언이 주를 이뤘다.

다소 낯선 느낌의 광화문글판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당시 신 창립자는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귀로 광화문글판을 교체하자고 제안했다.

이듬해 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그대 하루하루의/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문안이 걸리면서 광화문글판이 서울 시내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왼쪽)는 1991년 1월 광화문글판을 처음 제안했다./교보생명 제공

이처럼 30자도 채 안 되는 짧은 글로 시민들을 마음을 위로한 광화문글판은 2000년 문안선정위원회가 설치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12월부터 시인, 소설가, 카피라이터,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와 시민 참여를 통해 글판의 문구를 선정하고 있다.

2년 동안 문안선정위원들은 문안의 소재를 발굴하고 후보작을 심의·선정한다. 지금까지 유종호 평론가, 최동호(평론가) 교수, 공선옥 소설가, 정호승 시인, 장영희(수필가) 교수, 안도현 시인, 은희경 소설가, 한강 소설가, 언론인 노재현 씨 등 다수의 문인, 문학평론가, 교수, 언론인 등 전문가들이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지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2013년부터 4년 동안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글판 선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5년 가을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과 2016년 봄 최하림의 ‘봄’이 한강 씨가 추천한 글귀로 알려졌다.

지난해 봄 편부터 참여한 9기 선정위원에는 소설가 성석제, 시인 진은영, 원혜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언론인 신준봉 씨 등 외부인사 4명과 교보생명 및 대산문화재단 관계자 등 내부인사 3명 등 총 7명이 참여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선정위원들은 후보작들이 시대의 관심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계절과는 잘 어울리는지, 의미가 쉽게 전달이 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후보작을 선정한다”며 “여러 차례의 투표와 토론으로 선정된 문안은 가독성 높은 서체, 예술적인 디자인을 적용해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권이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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