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공으로 경기 진행한 프로배구... 안일함이 낳은 경기구 촌극
지난 시즌 공으로 경기 진행한 프로배구... 안일함이 낳은 경기구 촌극
  • 안산상록수체육관=이정인 기자
  • 승인 2019.12.06 22:26
  • 수정 2019-12-0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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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OK저축은행의 경기에서 지난 시즌 경기구가 사용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KOVO 제공

[한국스포츠경제=이정인 기자] 프로배구 OK저축은행과 대한항공의 경기에서 지난 시즌 경기구가 사용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경기구 제작 업체, 구단관계자, 한국배구연맹(KOVO)의 안일함이 나은 촌극이었다.

OK저축은행과 대한항공의 2019-2020 V리그 남자부 경기가 열린 안산 상록수체육관. 2세트 도중 대한항공 측이 갑자기 심판진-경기 감독관에게 공인구 확인 및 교체를 요구했다. 선수들이 경기 도중 사용한 공의 색깔이 기존 공인구와 다르다는 점을 어필했다.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도 공을 확인한 뒤 "올 시즌 공인구가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경기 감독관 및 코트 매니저, 심판진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 대조작업을 펼쳤다. 경기는 한동안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정의탁 경기 감독관이 공을 확인 후 사인을 한 뒤 다시 내놓았지만, 박 감독은 사안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두고 계속해서 어필했다. 이에 심판진이 "코트 매니저에게 지급 받은 대로 공을 가져왔다. 왜 우리에게 뭐라 하느냐"고 따지면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KOVO가 확인한 결과 대한항공의 지적대로 이날 경기에 사용된 공은 올 시즌 경기구가 아닌 지난 시즌에 제작된 공이였다. 이례적으로 경기 중 브리핑을 진행한 문용관(58) KOVO 경기운영실장은 "확인 결과 2018-2019시즌에 사용됐던 공이 올 시즌 경기구와 뒤섞인 채 이날 코트에 지급됐다"고 운을 뗐다.

경기구 제작 업체, 구단, KOVO 모두 과실을 저질렀다. 프로배구는 경기구 생산업체가 경기마다 홈팀에 공을 전달한다. 공이 도착하면 코트 매니저가 올 시즌 경기구가 맞는지 확인한다. 이어 경기 전 공기압 체크 등 확인 작업을 거친다. 경기구 6개(경기용 5개+예비용 1개)를 점검한다. 이상이 없으면 경기 감독관이 사인을 하고 경기에 사용한다. 생산업체가 착오로 작년 공을 잘못 보냈는데, 이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구단과 KOVO도 경기에 사용할 때까지 누구도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문 실장은 "공인구 제작 업체에서 각 구단에 공을 배분한다. 이후 코트 매니저와 심판진이 재질, 형태, 공기압 등을 확인한 뒤 경기 감독관이 사인을 하고 경기에 사용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지난 시즌 공인구가 섞였다.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구단과 연맹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에 관련해선 "지난 시즌 공인구와 올 시즌 공인구의 모델 넘버가 같다 보니 이를 잡아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V리그는 지난 시즌보다 반발력이 큰 공인구로 교체해 사용하고 있다. 공인구가 경기력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분명하다. 문 실장도 이를 인정했다. “공인구에 따라 탄성이나 재질의 차이가 빚어질 수도 있다. 면밀히 확인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확인 후 양팀 감독들이 해당 공인구를 일단 사용하고, 경기 결과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면서 "경기운영실장으로 이런 논란이 빚어진 부분에 책임을 통감한다. 경기 후 연맹 차원에서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양 팀 사령탑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석진욱(43) OK저축은행 감독은 경기 후 “홈 경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신경 쓰인다. 누구 잘못이냐고 물었는데 연맹에서 점검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했다. 잘못됐다고 본다. 어떻게 작년 공이 왔는지 궁금하다. 강력하게 항의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기원 감독은 "KOVO나 심판진이 정확하게 확인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공인구가 아닌 공으로 경기를 한 것으로 정식 시합을 한게 처음이다. 관련한 규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중간에 다시 공인구를 교체하면 감각 문제도 있어 양팀 감독 합의 하에 경기를 하기로 했다. 경기가 무사히 끝났으니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후 이런 실수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솔직히 룰을 완벽하게 알고 준비를 했으면 좋지 않나 싶다. 배구 룰이 따져보면 굉장히 복잡하다. 내가 알기론 (공인구) 관련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언제든 돌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