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손흥민, 8일 번리전 '환상 작품'
속도+기술, 손흥민 원더골의 비밀
손흥민 원더골, 토트넘 승리. 손흥민이 8일 번리와 경기에서 75m 단독 드리블 후 골을 터뜨린 후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심재희 기자] 모든 스포츠에서 '스피드'는 기본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빠르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스피드는 훈련으로 어느 정도 향상할 수 있으나 한계가 있다. 타고난 스피드를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그런데, 축구라는 종목이 더 매력적인 건 빠르다고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다소 역설적일 수 있지만 빠르기만 해서는 축구를 잘할 수 없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27)이 환상적인 골을 터뜨렸다. 8일(한국 시각) 잉글랜드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9-202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 번리와 홈 경기(토트넘 5-0 승리)에서 전반 32분 약 75m를 단독 드리블 한 뒤 오른발 슈팅으로 상대 골망을 갈랐다. 토트넘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공을 잡아 번리 페널티 마크 조금 뒤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골키퍼 포함 상대 수비수 9명을 허수아비로 만들면서 '환상 골'을 생산했다.

손흥민은 프로데뷔 후 빠른 발을 활용해 종종 '폭풍질주 득점'을 성공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 바이에르 레버쿠젠을 거쳐 EPL 토트넘에서도 환상적인 스프린트 능력을 뽐내며 골을 작렬했다. 더 놀라운 점은 손흥민이 최근 가속뿐만 아니라 변속에도 능해져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첼시와 경기에 이어 이번 번리전에서도 스피드를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역대급 솔로 골'을 완성했다.

첫 터치부터 피니시까지 그저 빠르게만 질주하진 않았다. 수비 진영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처음엔 속도를 안 높였다. 상대 선수들이 포위하듯 에워싸자 짧은 드리블로 공을 소유하며 전진했다. 그리고 갑자기 속도를 올려 빈 공간으로 질주했다. 뒤에 있던 수비수들이 따라 올 수 없는 곳으로 공을 드리블했고, 슈팅하기 좋은 공간으로 꺾어 침투했다. 골키퍼가 앞으로 나오며 각도를 줄이자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타고난 스피드에 반복 훈련으로 체득한 변속 능력이 함께 빛을 발했다. 2~3미터를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공을 소유하고, 수비수가 방해하려고 하면 늦추거나 꺾어서 계속해서 전진했다. 단순한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드리블 방법으로 수비 진영에서 공격 진영으로 단숨에 내달렸다. 상대 수비수로서는 단순히 빠르고 길게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느리게 꺾고'를 반복하기에 더 막기 어려웠을 수밖에 없다. 이번 손흥민 원더골이 진짜 괴물 같았던 까닭이다.

경기 후 조제 무리뉴 감독은 브라질의 레전드 스타 호나우두가 1996년 FC 바르셀로나 시절 콤포스텔라와 경기에서 기록했던 득점을 손흥민의 골과 비교했다. 당시 만 20살이었던 호나우두는 부상 전 환상적인 스피드와 보디 밸런스로 상대 수비진을 박살내며 골을 성공했다. 하프라인 아래에서 공을 잡은 뒤 폭풍 질주로 상대 페널티박스까지 파고들어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을 완성했다. 상대 수비수들이 유니폼을 잡아 끌어당기고 밀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화려한 발 기술과 스피드로 장애물을 돌파하며 골을 만들었다. '세기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호나우두의 '그 골'과 손흥민의 득점을 비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무리뉴 감독이다.

8~9년 전 1992년 K리그 득점왕인 임근재 서울왕희FC U15 감독과 손흥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정조국, 조재진, 구자철 등의 은사로 알려진 그는 손흥민에 대해 "정말 빠른 녀석이 있다고 해서 스카우트 하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독일 분데스라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더라"라며 "타고난 스피드에 속도 조절 능력만 더하면 더 큰 공격수가 될 것 같다"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임 감독의 눈이 정확했다. 최근 손흥민은 재능에 노력을 더해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이번 손흥민의 골이 만들어진 시간은 12초 남짓이다. 페널티박스 16.5m의 조금 앞에서 공을 받아 상대 페널티 마크 조금 뒤에서 마무리를 지었으니, 105m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세로 길이를 고려하면 75~76미터 정도를 12초에 질주한 셈이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손흥민이 최고속도로만 전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가속과 변속의 환상 하모니. 손흥민의 원더골이 완벽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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