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22일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기념영상을 시청하는 김 전 회장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이정민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년여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의 장례는 "장례를 소박하고 조촐하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는 소박하게 차려졌다. 고인은 별도의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의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가운데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과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추락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 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하고,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수출액(1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경련은 이날 김 전 회장 별세 관련 논평에서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이신 김우중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 때이던 1998∼1999년에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이전에 1979년부터는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전경련은 김 전 회장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전경련은 김 전 회장의 열정적인 경영철학은 여전히 우리 경제계에 큰 발자취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논평은 "무엇보다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서서 개척한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이라면서 "경제계는 고인이 일생을 통해 보여준 창조적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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