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초국적 팬덤을 자랑하는 막강한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 2013년 데뷔, 그간 한류가 넘은 적 없던 북미의 벽을 넘으며 K팝 씬에 돌풍을 일으킨 이 스타는 어떻게 탄생했고, 또 어떻게 K팝의 지형을 바꾸고 있는가. 세계 팝 씬의 변방에 있던 K팝으로 전 세계적인 대세가 된 유례 없는 스타들에 학계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 BTS의 성장이 보여준 K팝 소비 방식의 변화

방탄소년단이 처음으로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 2015년이다. '화양연화 pt.1'의 타이틀 곡 '아이 니드 유'로 방탄소년단은 처음으로 국내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2016년 처음으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KSPO 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1회에 1만 명에서 1만50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체조경기장은 K팝 스타들에게 일종의 '성공의 기준'이 되는 장소. 당시 이 콘서트 개최를 기념해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은 "데뷔하고 나서 가수 생활을 마치기 전까지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 한 번은 열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그 바람이 성사돼 기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데뷔 3년차에 톱의 자리에 오른 방탄소년단은 K팝 씬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다진 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하는 일반적인 한류의 루트와 다르게 이미 해외에서 두터운 팬덤을 가진 그룹이 뒤늦게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 케이스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이전까지 K팝의 진출지라 여겨지지 않았던 북미, 남미의 팬들에게 크게 호평을 받았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는 1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특별 세미나 'BTS 너머의 케이팝: 미디어 기술, 창의산업 그리고 팬덤문화'에서 이 같은 사례를 '수출형 아이돌'이라 표현하면서 "'수출형 아이돌'들의 사례는 K팝의 해외 인기에 국내에서의 인기가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K팝 스타들이 해외에서 먼저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던 데는 유튜브,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공연장에 가거나 해외 아티스트 영상을 보고 싶지만 정식 발매가 안 돼 현지 방송의 해적판(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복제돼 판매 및 유통되는 콘텐츠)을 구해야 하는 건 옛 일이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인터넷 망에 접속할 수 있다면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간단하게 접속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처럼 데뷔 초부터 SNS와 유튜브 활동을 집중적으로 해 왔던 스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언론학회 세미나 'BTS 너머의 케이팝'에서 발표하는 미셸 조 교수.

토론토 대학교 미셸 조 조교수는 'BTS 너머의 케이팝: 미디어 기술, 창의산업 그리고 팬덤문화'에서 한 발표에서 '리액션 비디오'를 예로 들며 방탄소년단의 데뷔 초기였던 2014년과 비교해 2019년 현재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하나의 대세 콘텐츠가 됐고, 이것이 해외 팬들이 K팝을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K팝이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님은 확실하다. '리액션 비디오'와 한국에서 탄생한 먹는 비디오인 '먹방' 등은 K팝과 결합, 소비자들을 더욱 적극적인 참여형 팬덤으로 만들고 있다는 게 미셸 조 교수의 설명. 적극적으로 스타와 관련된 콘텐츠를 올리고 관여도를 높인 팬덤은 국경의 벽을 넘은 글로벌 팬덤을 탄생시켰고, 방탄소년단은 이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결합이 거대한 문화적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 K팝의 새로운 키워드

팬덤의 이러한 새로운 소비 방식은 K팝 시장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시안 보이 그룹의 성공은 기존의 인종-젠더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해외와 국내 팬덤이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신(新) 민족주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분명 한 국가 출신으로 이뤄진 그룹이 전 지구를 아우르는 스타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주를 넘어 중동에서까지 활약하면서 방탄소년단은 다양한 국가의 팬들을 '아미'라는 이름으로 집결시켰는데,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적 현상과 충돌이 나타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이후 K팝에서 '새로운 남성성'과 '신 민족주의'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김구용 조교수는 'K팝의 상업적 성공을 나타내는 것들: BTS의 문화적 혼종성과 신자유주의적 남성성의 재고를 통해'라는 논문 발표에서 방탄소년단이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감정, 우정, 사랑 등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이해심이 많으며 위협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갖췄다고 설명하면서 이는 1990년대 말 이후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기 시작하면서 대두되기 시작한 새로운 남성성과 부합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얼굴과 감정적인 연약함, 부드러운 미소, 화려한 머리색 등이 여성 팬들의 욕구에 부합하고 여성 팬들과 친밀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한국언론학회 'BTS 너머의 케이팝' 세미나 전경.

아시안 남성들이 인종, 국경의 벽을 넘어 많은 다양한 국가의 여성 팬들에게 소구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줄 만하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이지원 석사는 '방탄소년단(BTS)의 상호교차적 효과: 방탄소년단 흑인 여성 팬덤을 중심으로'라는 발표에서 "그 동안 흑인 여성은 하이퍼섹슈얼하지만 로맨스의 대상은 안닌 모순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아시아 남성은 주로 무성애적으로 그려졌다"면서 방탄소년단의 흑인 여성 팬들이 그간 주류 미디어에서 배제됐던 흑인 여성과 아시아 남성의 관계를 팬픽, 팬아트 등을 통해 표현하고 생산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건 "기존의 미디어가 제시한 인종-젠더 관계 질서에 대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화적 융합이 남긴 숙제도 있다. 해외 팬들이 증가하면서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많은 K팝 스타들이 국내 방송에 출연하는 횟수를 줄이고 대신 해외 공연과 팬미팅을 진행하면서 국내 팬들이 소외감이나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팬과 바퀴벌레를 합성한 '외퀴' 같은 혐오 표현이 생겨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규탁 교수는 발표에서 "이는 K팝에 투영된 민족주의 성향, 그리고 다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갖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고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는 K팝의 빠른 성장과 해외 팬덤의 폭발적 증가를 돈벌이나 국위선양의 관점에서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과거의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서 "지역 음악이자 글로벌 음악으로서의 K팝이 근본적으로 갖는 이중적인 속성으로 인해 K팝은 '세계 속의 보편적인 팝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로부터 벗어나 '탈국가화' 움직임을 보이지만 동시에 한국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 문화의 일종으로서 본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한국의 것으로 재정의되는 '재국가화' 경향을 지닌다. 이 두 흐름 사이의 융합과 갈등은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는 한 꾸준히 반복되는 문제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한국언론학회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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