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 화제 / MBC방송화면 캡처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지난 1979년 발생한 12.12사태가 주목받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주도하는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이다.

1212 사태가 발생한 지 40년이 지났다. 사건의 장본인인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의 행보는 현재 엇갈리고 있다. 5·18 무력진압에 대해 혐의를 전면 부인해 온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나마 사죄 의사를 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어서다.

10·26사건이 발생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한편 앞서 1212사태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던 조홍 전 육군헌병감이 85세를 일기로 지난해 12월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고예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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