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사진으로 가보는 티베트 고원] <1>거대한 지구의 생채기 자다토림
▲ 자다토림(札達土林). 만년설의 히말라야 산맥 앞에 사열하듯 끝없이 이어진 지구의 생채기. 그랜드캐니언에 버금가는 웅대하고 기기묘묘한 풍광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김성태 제공

티베트 고원의 혹독한 기후와 험한 지형은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설산과 순백의 빙하, 코발트 빛 호수는 거친 듯 순수한 원초적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매혹한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오체투지로 자신을 버리며 투박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간다. 순박하고 깨끗한 대자연과 여기에 몸 붙이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퍽퍽한 일상의 생채기를 치유하고 마음에 미묘한 울림을 준다. ‘한국스포츠경제’는 바쁜 세상에서 느림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김성태의 티베트 인문지리 기행서‘티베트에 美치다’를 발췌해 연재한다. 그는 3,000km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이 거대한 울타리를 이룬 티베트 고원을 종단했다. <편집자 주>

자다(札達)는 티베트 서북부 아리(阿理)지역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가장 낮다고는 하지만 해발이 3,500m다. 구게(古格)왕국 유적지와 토림(土林)으로 유명한 흙의 마을이다.

신장공로. 해발 6,000~8,000m의 험준한 고산 산악지대의 깎아지른 절벽의 좁고 험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외길의 위험한 벌거숭이 민둥산을 몇 개 넘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먼지가 날리는 황무지 고원을 달린다. 무채색의 비슷비슷한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제법 높은 구절 양장의 험한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진흙색 일색이던 주변의 민등산들이 진한 보라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산세도 동화에 나올법한 예쁘고 기이한 모습으로 바뀐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5,510m 아이라 고개 정상.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현실이 아닌 꿈속의 세계 같다. 저 아래도 사람이 사나 보다. 보라색 협곡 사이로 실핏줄 같은 길이 나있다. 오색의 타루쵸(오방색 깃발)가 바람 한 점 없는 고개마루턱의 황량함에 색을 입히고 여기저기 쌓여있는 조그마한 돌탑들이 삭막한 풍경에 생기를 넣어준다.

아래에 보이는 평원 왼쪽으로 만년설산의 옷을 입은 히말라야 산맥이 일렬종대로 서 있고 바로 코 앞에 끝이 안 보이는 기기묘묘한 흙산의 숲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중간쯤 내려와 자연과 흙이 만들어낸 장엄한 대지의 예술품에 넋을 잃는다. 수천만 년의 세월을 안고 비와 바람에 깎이고 골이 패이고 쓸려나간 지구의 생채기가 있는 그대로 원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상에서 본 화성의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에 와 있는 느낌이다.

자다토림(札達土林)!

말 그대로 흙산이 만든 거대한 흙의 숲이다. 숲인데 나무 한 그루 없는 진기한 풍경이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퇴적암층의 기괴한 절경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버금가는 웅장한 절경. 윈난성의 석림과 토림 등에 비하면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단연 앞선다. 워낙 접근하기 어려워 바깥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진주 같은 자연경관이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질경관 15경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절경이다. 신과 자연의 합작품, 흙이 빚은 조각 전시장이 여기 있었다.

접시 비행기 같은 수십, 수백 대의 UFO(미학인비행물체)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 수많은 부처가 도열한 것 같은 만불상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바벨탑, 만화영화에 나오는 괴물과 용, 마천루, 에밀레종, 망루, 이집트의 거대한 신전 기둥, 버섯 같은 갖가지 모양의 거대한 자연 조각품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수트레이 강(江)이 토림 바닥에 깊은 골을 만들며 협곡을 가로질러 흐른다.

원래 이곳은 지구가 태어날 때 직경 500km가 넘는 호수. 지각변동과 함께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호수바닥에 있던 암석과 진흙이 수면 위로 올라와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비바람에 침식되고 풍화되면서 형성됐다.

토림 속 골짜기에서 길을 잃으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다 주변경관이 엇비슷하고 단조로운 진흙색 한 가지여서 동서남북 사방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토림으로 들어간다. 초록의 생명체나 물기 하나 없는 먼지만 풀풀 날리는 메마른 진흙 숲. 토림 사이로 난 꼬부랑길을 1시간 여 달리는 동안 장대한 흙의 조각품들은 입을 못 다물게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 아름답고 기묘한 자연의 경이로움, 몇 시간을 달려도 끝이 없다. 출처=‘티베트에 美치다’(포토닷)

● 김성태는
30여년간 언론계 생활을 끝낸 후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아카데미(NGPA) 등에서 사진공부를 했다. 달동네 등 사라져가는 것들과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고 이를 렌즈에 담기 위해 세계 오지 구석구석을 찾고 있다. 스촨, 윈난, 칭하이, 간쑤성에 강제로 편입되어 잊혀진 땅이 된 동티베트 지역에서 세계의 지붕으로 일컬어지는 티베트 고원까지, 일반 여행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티베트의 광활하고 내밀한 곳곳을 수차례 찾은 후 이 기록을 담은‘티베트에 美치다’를 펴냈다.

● 자다마을과 토림은
자다는 중국 서부 티베트 자치구의 도시다. 수트레이 강이 뒤로는 흙산 줄기가 버티고 있는 아늑한 분지마을이다. 현청 소재지로 소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마을은 손바닥만해도 경찰서, 법원, 세무서, 병원 등 관공서와 번듯한 여관급 호텔과 식당 등 다 있다.

토림과 구게왕국 유적지가 유명하다. 자다토림은 ‘중국판 그랜드캐니언’이다. 자다 시가지를 20여km쯤 우회해서 샹취안허(자다에 위치한 강)를 건너 가면 닿을 수 있다. 협곡만 15km에 이른다. 협곡이 끝나고도 계속되는 만물상의 연속선까지 더하면 40km 가까이 대자연의 걸작들이 이어진다.

구게왕국은 9세기 티베트의 토번(吐蕃)왕국이 분열된 뒤 성립된 지방 정권이다. 1635년 라다크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멸망한다. 구게왕국 시대 수도였던 차파랑(현 구게왕국 유적지)에 이어 제2의 도시였던 톨링이라는 옛 도시가 자다다. 지금도 자다를 톨링으로 부른다.

자다 마을 북쪽에 구게왕국 당시의 톨링사원과 거대한 불탑, 토굴, 봉화대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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