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김충식 작가./임민환 기자 limm@

[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내년 1월 개봉을 앞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정부 18년을 담은 김충식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세계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해외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해외 유력매체 버라이어티는 “배우-감독 조합뿐만 아니라 주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과 시간을 다룬 영화로 해외에서도 흥미를 느끼고 있다. 영화는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병헌이 연기한 김규평의 실제 모델은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던 김재규다.

원작은 1990년부터 동아일보에 2년 2개월간 연재됐고 단행본은 한·일 양국에 발매돼 당시 총 52만부가 판매될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됐다. 원작자 김충식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약 30년 간 근무한 기자로 중앙정보부를 남다른 사명감으로 파헤쳤다. 수많은 압력과 회유 속에서도 집필을 놓지 않은 김충식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로 억압 속에 살던 과거 한국사회를 회상했다. 그는 ‘남산의 부장들’을 역사의 거울이라고 표현하며 “자동차가 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백미러를 봐야 한다. 역사를 직시하고 반추해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중앙정보부를 낱낱이 해부한 논픽션이다. 당시에 이런 글을 쓰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취재도 어려웠을 것이고.

“정보부장 10명에 대한 스토리다. 각 정보부장들이 권력의 최고위 하수인, 정권보위부 역할을 해왔지만 아무도 그 악역의 비행(非行)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망을 갔고 나는 어떻게든 붙잡아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기자로서, 취재원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직접 만나는 인터뷰가 기사 작성의 원칙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그 과정에서 겪은 고충이 많았을 듯한데.

“제 5대부장, 김계원씨가 나를 피했다. 그를 연재할 차례가 다가오는데 몇 달 동안 숨바꼭질만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 눈이 펑펑 오는데 이 시간이면 집에 있어야 마땅하다 싶어 밤 10시에 그의 아파트로 갔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 계단에서 3시간 동안 기다렸다. 결국은 문을 열어줬고 아침 6시까지 인터뷰했다.”

-정부의 압력도 있지 않았나. 어떻게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나.

“2년 2개월이 걸렸다. 매주 연재소설 쓰듯이 했다. 협박전화도 많이 받았다. 한 회에 적어도 3개~4개의 비화가 있어야 했다. 다 아는 스토리를 되풀이 할 수는 없었다. 신문에서 고정광고를 확보한 최초의 기획 연재였다. 물론 압력과 협박도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 음모’(1963년)라고 하는 수사기록을 발굴했다. 그걸 보도했는데, 노태우 대통령 재임 때다. 청와대가 ‘대통령 모독이다. 수사기록 유출이다’라며 나를 구속하고 연재를 중단시키려 했다. 일부 참모들이 ‘국제적인 망신만 되고, 시끄러울 뿐 이기지도 못한다’고 건의해 겨우 화를 모면했다는 말을 들었다. 동아일보의 김중배 편집국장이 외풍을 막아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남산의 부장들’에는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중앙정보부가 벌인 정치공작, 비화 등이 담겼다. 취재 과정이 궁금한데.

“오픈돼 있는 사건을 심층 취재 했다. 그 동안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발굴해야 했다. 전적으로 다 발굴하는 건 아니고 30프로 정도 물위에 떠있는, 그러나 70% 이상의 빙산 아래 부분을 추적하고 파헤쳐 썼다. 취재원들로서는 겁도 나고, 백해무익했을 것이다. 기자가 공격적으로 기사 취재하려고 하니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김충식 작가./임민환 기자 limm@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정권이 현 시대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태극기 부대의 정신적인 지주가 돼서 지금도 여론의 몇 십 퍼센트를 지배하고 있다. 딸인 박 전 대통령의 힘이 아니고, 바로 아버지 박정희의 영향력이다. 그만큼 박정희라고 하는 존재는 한국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경제발전에 기틀을 다진 CEO라는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그 대가로 인권과 민주주의와 정치를 희생시키고 악랄한 권력정치를 행한 이라는 양면이 존재한다.”

-당시 독재정권을 겪은 사람으로서 시대 상황이 궁금하다. 알려진 것보다 더한 탄압이 있었나.

“박정희 시대 18년이 끝나고 1980년대도 지독했다.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중국의 망명한 군용비행기가 있었는데, 그 비행기조종사에 대한 대만으로 보내느냐 중국으로 보내느냐라는 신병처리가 관심사였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그 결정을 특종 보도했다고 트집 잡은 국가안전기획부가 정치부장 이상하, 편집국장 이채주, 그리고 나를 지하실에 데려다 3박 4일동안 가혹하게 고문했다. 무슨 파렴치한 범죄도 아니고, 국가기밀 위반도 아니었다. 완전히 육체적으로 해부하고, 인격적으로 해체하는 짓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문명사회의 비통한 불법행위를 한 번 고발해야 한다. 1986년판 미국 국무성 인권보고서에 그 고문의 실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박정희 시대 20년 기승전결은 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 전두환이라고 서사했다. 이들이 계속 권력을 쥘 수 있던 이유는.

“박정희 시대는 쿠데타로 열렸다. 구질서의 지배 계층을 다 쓸어냈다. 신 지배계층 군인들로 들어오지 않았나. 군인 중에 논리 학식 있는 김종필, 영어 구사하는 이후락 등이 선두에 선 것이다. 정당성이 결여된 집권자를 경호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김형욱이다. 이 사람들을 앞세워 박정희가 정치를 한 거다. 쿠데타는 정당성이 결여됐으니까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 때문에, 그런 중간보스들이 필요했다. 중앙정보부는 그러한 호위부대고, 부장들은 그야말로 박정희의 이너써클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인터내셔널 포스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10.26 사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인권과 정치를 희생하면서도, CEO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국가경제도 국민도 같이 성장했다. ‘너희를 18년간 먹여 살려주었다’라고 자만에 찬 고착된 권력자로 있는데 국민은 국민대로 성장하고 해외로 눈이 열리고, 보는 눈이 높아졌으니 박정희 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 그 빅뱅으로 1979년 김재규가 총을 쏘지 않았다면. 서울시에서 탱크로 피바다를 이루었을지 모른다. 10.26은 그런 유혈사태를 막은 의미가 크다. 민주화의 단계가 다량의 피를 흘리고 내전에 가까운 것을 거치느냐, 아니면 유혈이지만 대통령과 경호원의 죽음으로 오냐는 의미에서 김재규는 평가 받고 있다고 본다.”

-‘남산의 부장들’ 책을 낸 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열심히 기사를 썼을 뿐이다. 매주 한 페이지 나가는 기사에 충실했던 것인데 좋은 평을 얻어서 책을 냈고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에서도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에서 번역 출간했다. 이제 영화가 된다니, 세상 일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하다 영화화까지 이어지게 됐나.

“어느 날 우민호 감독이 날 찾아와서 자기가 1990년대 대학시절에 감독을 꿈꿀 때 이걸 읽었다고 했다. 읽으면서, 아 이건 내가 감독이 된다면.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대부’라는 영화처럼 하고 싶다더라. ‘내부자들’로 대박이 났다고 했다. 청년기 꿈이었던 ‘남산의 부장들’을 영화로 찍고 싶었다며 원작을 사야겠다고 했다.”

-젊은 층은 당시 시대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남산의 부장들’은 50여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역사의 거울이다. 자동차가 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백미러를 봐야 한다. 백미러를 보지 않고 달리면, 우리는 또 다른 패배를 답습하거나 비통한 후퇴를 되풀이하게 된다. 백미러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추하지 않으면, 그저 쓸데없는 아집과 자가당착의 아우성에 그치고 만다.”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혹은 좋은 세상은.

“두 가지를 생각한다. 노년층과 장년층. 즉 이 세상 기반을 구축한 세대와 새롭게 자라나 좌절하는 젊은 세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청년 일자리 부족에 대해 윗세대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진보와 보수만으로 나뉘어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아졌다. 이를테면 미중무역 분쟁, 플라스틱 쓰레기, 탈원전과 태양광발전, 한일외교관계,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이런 과제들은 진보 보수로 갈려서 해결할 수 없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무책임한 ‘총론’(總論)전투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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