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이정은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다. 국내외적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은 천만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선균)네 가정부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정은.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한 이정은은 오로지 연기자로 한 길만 걸어왔다. 지난 해 방송한 tvN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한 데 이어 올해는 ‘기생충’, KBS2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기작품에서 눈에 띄는 호연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백꽃 필 무렵’은 시청률 23.8%(최종회)를 찍으며 올해 방송한 미니시리즈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극 중 이정은은 동백(공효진)의 엄마 정숙 역으로 출연해 반전에 가까운 모성애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기생충’ ‘동백꽃 필 무렵’까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올해 삼재라고 했는데 호삼재라고 했다. 호삼재는 좋은 삼재라고 했다. 일단 어떤 한 작품이 물꼬를 트면 그 뒤로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많이 생기더라. 작가와 감독님들이 찾아주신 결과라고 생각한다.”

- ‘동백꽃 필 무렵’을 마친 소감은.

“필력이 대단한 임상춘 작가님을 만나 작품을 하게 돼 영광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딸을 고아원에 맡겨야 했던 여성,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그렸다. 평소에도 워낙 공효진이라는 배우를 좋아했다. 우리 딸과 좋은 케미를 만들 수 있어서 감사했다.”

- ‘쌈, 마이웨이’(2017)를 집필한 임상춘 작가와 인연이 이어졌는데.

“작가님이 정말 옆집 족발집 사장님처럼 나와서 좋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내가 하면 ‘엄마’라는 사람이 잘 나올 것 같다고 같이 하자고 했다.”

-이정은이 본 임상춘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나.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이기도 한데.

“작가님은 역할을 주고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자유롭기도 하고 책임감도 부여해주는 것 같다. 양딸이 저를 찾아와서 보험금을 달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작가님한테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종방연 때 만났는데 ‘전사 부분들이 어려웠을 텐데 책임감 있게 소화해주시고, 동백 엄마 역할을 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작가님을 찾는 분이 너무 많아서, 한 10분 정도 얘기한 것 같다.”

-정숙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모를 때 이 사람에 대한 추측이나 의심이 있지 않나. 그게 반전이 될 때 관심과 애정이 오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대본을 읽으면서 정숙의 한 방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대본이 다 나온 상태도 아니었다. 게다가 시청자들이 정숙을 두고 ‘살인자다, 보험사기를 치는거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오해가 풀리는 순간은 어떨까 생각하곤 했다. 이게 다 작가님의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오해를 걷어냈다.”

-실제 비혼인데 모성애를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위가 다 재료다. 주위에 있는 게 다 엄마다. 선배들이 하시는 걸 보고 들은 걸로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중요한 토대는 내가 연극을 할 때 할머니 캐릭터도 많이 했다. 연배가 많은 역할을 많이 했다. 남들이 안 하려고 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오히려 지금은 캐릭터의 나이가 깎이고 있는 추세다. (웃음) 물론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모태가 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신다.”

-동백을 버린 엄마라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억울하지 않았나.

“좀 억울했다. 사실 구체적인 서사가 나온 건 후반부였으니까. 이 억울함을 어떻게 풀 수 있나싶었다. 그러나 이런 정숙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나 역시 장렬한 최후를 맞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님이 계속 고민을 했다고 했다. 정숙까지 죽으면 작가님도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나를 살린 거라고 했다.”

-공효진과 호흡이 참 좋았는데 현장에서 어땠나.

“공효진을 워낙 좋아했다. 연극이야 먼저 했지만 매스컴에서는 내가 후배다. 여러 매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공효진과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실제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스스럼없이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사를 대사가 아니라 대화하는 것처럼 연기한다. 덕분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연기한 것 같다.”

-스스로 노력파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재능이 더 크다고 생각하나.

“사실 어렸을 때는 재능이 있긴 있었다. 대본을 나눠주고 연기하는 걸 좋아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카메라 울렁증도 있고 여러 어려움을 느꼈다. 어렸을 때 재능이 있었을지언정 그걸 계발하는 건 노력이 따랐기 때문이다. 단역부터 천천히 밟아서 지금의 내가 완성된 것 같다.”

-최근 가장 행복을 느낀 순간이 있나.

“‘기생충’ 때를 잊을 수 없다. 2시간 30분을 분장한 뒤 지하에서 장면들을 소화하는 게 사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모니터 시사로 볼 때 ‘아, 이래서 사람들이 영화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노동의 결과가 흥행으로 이어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배우로서 너무 큰 보람을 느꼈다. 처음으로 칸에 갔을 때도 정말 행복했다. 칸의 위상을 실감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신이 나 있었다. 봉준호 감독님이 나보고 ‘왜 정신이 팔려 있냐’고 하기도 했다. 칸의 반응을 보고 미국에서도 호응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고 오락적이면서도 빈부계층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니까. 역시 내 예상이 적중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어떤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성실하게 작품을 하고 싶다. 늘 다음 작품을 고민했는데 잠깐은 쉬어가려고 한다.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면 평정심이 온다. 그 상태에서 작업하고 싶다. 아마 이 특수를 계속 누릴 수는 없을 거라고 본다. 내년에는 이정은의 시대 뿐 아니라 다른 후배들의 이름이 거론될 거라고 본다. 자리를 내주는 건강한 선배가 되고 싶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을 정도로 잘 왔다고 생각한다. 고두심, 김혜자 선배처럼 초연하게 연기하고 싶다.”

사진=임민환 기자 limm@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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