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에겐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 남편은 없다. 이런 현실을 견디지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고통받지 않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라. 진심으로"라고 한다. 어쩌면 원망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연극 '메리제인'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 어떤 불행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고, 느닷없는 고통에 어딘가로 밀려나더라도 소소한 것들에 위안을 느끼고 그것들에 지탱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삶.

메리제인은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기댈 가족 하나 없이 홀로 중증 뇌성마비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교사를 꿈꿨지만 아들 알렉스가 태어난 뒤로 꿈은 접어야했고 대신 재택 근무가 가능한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알렉스가 받고 있는 의료보험 혜택이 사라진다. 때문에 메리제인은 어떻게 해서든 아득바득 일을 잡고 있어야 한다.

사회의 시스템은 안타깝게도 약자를 향해 있지 않다. 더불어 살아야 하고 누구든 삶의 기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건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이야기다. 매일같이 산책을 나갈 수 없는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메리제인은 창문의 안전장치를 떼어내야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반드시 창문에 안전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규범은 메리제인을 예외로 삼아주지 않는다. 알렉스가 창문을 열고 떨어지기는 커녕 자신의 목조차 가눌 수 없는 상태라는 건 고려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법규를 어기고 사회가 그어놓은 정도의 선에서 벗어나야 하는 하루하루. 주변인들이 그런 메리제인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자신의 마음과 시간을 조금씩 더 내어주는 것과 되지 않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그리고 메리제인과 알렉스가 본의 아니게 저지르는 소소한 탈규범들을 눈감아 주는 것뿐이다.

권력이든 돈이든 가진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정도를 지키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면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규칙에 따르기 위해 약자들이 감당해야 할 출혈은 때로 너무 크다. 메리제인이 소소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과정들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크고작은 규칙들이 때로 얼마나 큰 모순을 야기할 수 있는지,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만큼의 융통성을 발휘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혹은 얼만큼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때문에 '메리제인'은 표면적으로는 큰 불행을 가진 어떤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모난 돌이 되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쳐야 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배우들의 연기는 특히 발군이다. 남성 배우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우들의 모든 연기가 자연스럽다. 특히 무대에서 1초도 내려갈 수 없는 메리제인 역의 이봉련, 임강희 배우는 실제 메리제인이 된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의 흡입력 있는 연기로 120분을 꽉 채운다.

삶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지만 신파가 없다는 점은 이 작품의 큰 장점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역시 누구 하나 오열하지 않는다. 슬퍼도 엉엉 울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들이 '메리제인'의 이야기에 더 공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2020년 1월 19일까지. 만 15세 이상. 110분.

사진='메리제인' 포스터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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