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의선 수석부회장, 올초 150억 투자해 VR품평장 완성
정의선(오른쪽 두번째)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의 ‘고프로’ 전시장에서 가상현실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한스경제DB

[한스경제=(화성) 강한빛 기자] 지난 2017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미국최대가전쇼(CES 2017)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VR체험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자리에서 가상체험을 통한 혁신을 꿈꿨다. 2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그룹은 차량을 개발하는데 가상현실을 이용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혁신은 가상의 공간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VR(가상현실)을 적용해 자동차 개발의 완성도를 높이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하며 기존 공간의 의미를 확장해 미래 모빌리티 개발을 위한 ‘몸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현대기아차

150억원 통큰 투자... 정의선 수석부회장도 VR 끼고 디자인 품평

현대·기아자동차는 17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중 VR을 활용한 디자인 품평장과 설계 검증 시스템을 공개하며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의 본격 가동을 알렸다.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는 지난 7월 연구개발본부 조직체계가 ‘아키텍처 기반 시스템 조직’으로 개편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기아차는 개편 일환으로 ‘버추얼차량개발실’을 신설했고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준비해왔다.

버추얼 개발이란 다양한 디지털 데이터를 이용해 가상의 자동차모델 혹은 주행환경 등을 구축해 자동차를 개발하는 과정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빠르게 디자인을 바꿔 품평까지 진행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실물 시제작 자동차에서 검증하기 힘든 오류 등을 빠르게 확인하고 개선해 자동차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평이다.

특히 현실에서는 크기 때문에 디자인 모델을 검토하기 힘든 대형 상용차 개발에서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가상공간에서는 크기와 부피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비용절감까지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 클레이 모델로 품평을 하면 클레이 모델을 하나 깎는데 시간과 비용이 소모됐지만, VR을 활용하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내외장 디자인이 합쳐진 디지털 모델을 보고 디자인을 품평하고 수정할 수 있어 소모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현대·기아차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완전히 도입될 경우 신차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4월부터 VR 디자인 평가를 도입하기 위한 검토에 돌입했고 올해 3월 150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VR 디자인 품평장을 완공했다.

VR 디자인 품평장은 20명이 동시에 VR을 활용해 디자인을 평가하는 게 가능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역시 이곳에서 VR을 착용해 미래 차 디자인을 품평하는 곳이다. 미래 차의 모습이 그려지고 수정과 덧칠의 과정을 거치는 거대한 스케치북 같은 공간이다.

정확한 디자인 품평이 가능하게 하는 건 VR 디자인 품평장 천장에 위치한 36개의 모션 캡처 센서다. 이 센서가 평가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정밀하게 감지해 평가자가 가상의 환경 속에서 정확하게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게 한다. 디자인 평가자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 차량의 부품, 재질, 컬러 등을 마음대로 바꿔보며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양희원 연구개발본부 바디기술센터장 전무는 “현재 자동차 산업은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먹어 치우는 대변화와 격변의 시대에 있다”며 “현대기아차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변화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래 차에 대한 역량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VR 디자인 품평장”이라고 설명했다.

VR 디자인 품평 모습을 시각화한 그림/사진=현대기아차

직접 써보니 눈앞에 미래가 성큼... “고객 관점에서 경쟁차종도 잡는다”

“수소 대형트럭 콘셉트카 ‘넵튠’을 가상 공간에서 만나보겠습니다” VR 디자인 품평장에서 기계를 착용해 실제 품평을 체험해 봤다. 앞서 현대·기아차는 지난 10월 공개한 수소 전용 대형트럭 콘셉트카 ‘넵튠’의 최종 디자인 평가부터 해당 VR 디자인 품평장을 시범 운용했다.

배낭 형태의 장비를 등에 메고 VR 장비를 착용하니 눈앞에 영화 매트릭스를 방불케 하는 가상 공간이 펼쳐진다. 장비를 착용한 다른 이들은 각각의 ‘User’ 번호를 부여받은 아바타의 형태로 시각화된다. 헬멧을 쓴 '디지털 전사'의 느낌도  들었다.

생소한 모습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먼발치에 넵튠의 모습이 보였다. 양옆에 벤츠, 테슬라 등 경쟁차종의 모델까지 같이 놓여 있어 한눈에 비교 또한 가능했다. “배경을 바꿔보겠습니다” 인솔자가 말을 하자 넵튠 주변 배경이 설원, 도시, 탁 트인 자연환경 등으로 변화한다. 다양한 배경 속 자동차 디자인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보는 과정이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나 눈발, 태양빛까지 섬세하게 눈 앞에 펼쳐졌다. 이후 넵튠의 내부에도 들어가 봤다. 운전석, 보조석은 물론 2층에 위치한 간이침대의 모습까지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K5의 패스트백은 VR 설계 품질 검증 프로세스의 도움이 컸다는 설명이다/사진=기아자동차

신규 구축된 VR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통해 K5도 살펴볼 수도 있었다. 기아차는 지난해 6월 VR을 활용한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 그동안 시범 운영해왔다. 기존에도 디지털 차량 평가는 일부 진행됐지만 큰 화면을 통해 2D 환경에서 주행 화면을 보는 것에 불과해 실제 차량의 성능을 정밀하게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신규 구축된 VR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은 자동차 운행 환경까지 가상으로 구현해 부품 간의 적합성이나 움직임, 간섭, 냉각 성능 등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해 평가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렸다. 덕분에 차의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보다 꼼꼼하고 확실한 설계 품질 검증이 가능해져 개발 중반기나 막바지에 이르러서 설계를 전면 수정하는 등의 변수를 줄였다는 평가다.

VR 장비를 착용한 연구원들은 이 가상의 디지털 자동차를 직접 운행할 수 있고 컨트롤러로 운행 중인 차량을 마음대로 절개해 엔진의 움직임이나 부품의 작동 상황을 정밀하게 확인할 수도 있다.

특히 기아자동차 3세대 K5의 패스트백 디자인은 VR 설계 품질 검증 프로세스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설명이다. 신형 K5는 뒷유리가 트렁크 리드를 크게 덮고 있는 패스트백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기존 차종과는 다르게 리어 글라스와 트렁크 리드에 새로운 구조가 적용됐다. 때문에 두 부품 간 연결감을 실제 차와 동일한 조건에서 확인해야만 했는데, VR 설계 품질 검증 프로세스 덕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외에도 VR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통해 ▲고속도로, 경사로, 터널 등 다양한 가상 환경 주행을 통한 안전성▲도어, 트렁크, 후드, 와이퍼 등 각 부품의 작동 상태 ▲운전석의 공간감 및 시야 확인 ▲연료소비효율 향상을 위한 차량 내외부 공력테스트 ▲조작 편의성 등의 가상검증이 가능하다.

현대·기아차 설계 부문은 추후 생산·조립 라인 설계에도 VR을 도입해 조립성을 검증함으로써 보다 인체공학적이고 효율적인 조립 라인 및 작업 환경을 설계할 예정이다.

더불어 디자인 부문은 유럽디자인센터, 미국디자인센터, 중국디자인센터, 인도디자인센터 등과 협업해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에서 차량을 디자인하고, 디자인 평가에 참여하는 원격 VR 디자인 평가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또 디자인 품평 외에 아이디어 스케치 등 초기 디자인 단계로까지 VR 기술을 점차 확대하고, 실제 모델에 가상의 모델을 투영 시켜 평가하는 AR(Augmented Reality) 기술도 도입하는 등 버추얼개발 프로세스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강화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라며 “이를 통해 품질과 수익성을 높여 R&D 투자를 강화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강한빛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