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19세기 전설적 여배우 사라의 패션-뷰티는 지금봐도 놀라워
엄숙한 시기에 과감하게 바른 바른 붉은 립스틱 의미는...

[한국스포츠경제=유아정 기자] 연예부에 있으면서 패션 뷰티를 함께 담당하다 보니 매 해, 매 시즌, 매 번 발제하는 기사가 있다. 바로 여배우 립스틱.

‘연예인 같은 몸매나 얼굴을 바라는 건 무리이지만 입술 정도는...’ 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사람들은 다른 물건보다 여배우 립스틱을 위한 지출에는 유독 관대하다.

그러다 보니 전지현 립스틱이 몇 초에 몇 개 팔렸네, 송혜교가 드라마에서 바른 립스틱이 완판됐네 따위의 기사가 쏟아지게 된다. 그냥 립스틱도 아니고 꼭 연예인 누구누구 이름이 앞에 붙어 눈길을 끌다보니,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자기 이름 건 립스틱 하나 남기지 못한 연예인은 굉장히 서럽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처럼 연예인에게 립스틱이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이가 있으니 바로 19세기 전설적인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1844~1923)다. 신화적 여배우로까지 불렸던 사라 베르나르는 극강의 미모와 지성 그리고 연기력까지 다 갖춘 최고의 여배우였다.

천생 엔터터이너였던 것이 분명한 게, 순회공연에는 새틴으로 수놓은 관을 가지고 다니면서 낮잠을 즐겼고, 한밤의 파리 시내를 토끼털 코트만 걸치고 누볐다는 일화가 있다.

패션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결핵을 앓아 비쩍 말랐지만 당시 트렌드였던 풍만한 몸매처럼 보이고자 항상 화려한 드레스로 몸을 휘감고 목에는 스카프를 둘러 시선을 위로 모으는 센스를 발휘했다.

이처럼 언제 어느 순간에나 빛이 나는 그녀를 당대 화가들이 가만뒀을 리 만무하다. 알폰스 무하를 비롯해 앤디 워홀, 조반니 볼디니 등은 사라 베르나르의 화려하면서도 극적인 자태를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 중 사라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그림은 조르주 쥘 빅토르 클래랭(1843~1919)이 그린 초상화였다.

사라 베르나르의 초상화. 조르주 클래랭

초상화 속 그녀는 흡사 디즈니 ‘겨울왕국’ 엘사를 연상케 한다. 오트쿠튀르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워스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화이트 새틴 드레스를 입고 데이베드에 나른하게 기댄 모습은 몽환적이다. 번쩍거리는 새틴으로도 성에 안차는지 목과 소맷부리, 드레스 자락에는 모피를 풍성하게 둘렀으며 흰색 타조 깃털 부채까지 들고 ‘눈의 여왕’ 패션을 완성했다. 이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심하게 하얗게 차려입은 그녀가 오직 한군데 색을 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입술이다. 붉디붉은 입술은 순백의 드레스와 창백한 안색을 그 어느 것보다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사라 베르나르가 활동하던 19세기는 사실 화장품 계의 암흑기였다. 엄숙한 빅토리아 여왕 영향으로 입술 칠하기는 매춘부나 무대 위의 배우에게만 제한적으로 허락된 행위였다. 이 같은 립스틱을 무대도 아니고 공공장소에서 과감하게 바르고 나타난 사라 때문에 대중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자고로 립스틱이란 몰래 숨어서 바르는 물건이지 백주대낮에 바르고 다니는 물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입술에 색을 더하는 것일 뿐인데 립스틱은 20세기 들어서야 당당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1915년 미국의 발명가 모리스 레비가 오늘날 우리가 립스틱이라 부르는 총알 모양의 슬라이딩 튜브를 처음 선보이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여자들은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레시피로 비밀스럽게 만든 립스틱을 몰래 바르는 고생에서 벗어나 상점에서 자유롭게 사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현대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으깬 곤충과 밀랍, 올리브 오일을 섞어 만드는 제조법 때문에 몇 시간 후엔 입술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 엄청난 단점은 붉은 입술 만들기에 대한 열정을 사그러지게 만들 법도 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무성영화에서 여배우들이 과장된 입술을 하고 등장하자 여성들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의 입술을 따라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오랜 시간 여성미와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던 립스틱은 오늘날 더욱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1912년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붉은 립스틱 덕에 립스틱은 ‘여성 해방’을 의미하게 됐는가 하면, 1930년대 대공항기에 나홀로 매출이 증가하면서 ‘립스틱 효과’라는 경제학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편견에 맞서 새빨간 립스틱을 당당하게 바르던 사라 베르나르는 오늘날 거리에 넘치는 붉은 입술의 물결을 보면서 ‘거봐, 내가 맞았지’라고 어깨를 으쓱거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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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패션, 뷰티 기자 명함을 파고 다닌 지 어언 20년차 입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바람에 명화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명화 속 패션-뷰티-'연예스러운' 것들을 재미있게 풀어가겠습니다.

 

유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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