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CES2017 이후 본격 VR채택 의지반영... 그랜저, K5, GV80에도 적용
150억원 들여 VR품평장 설립... 글로벌 5개 디자인센터에 시스템 갖춰
신차개발 기간 20% 앞당겨... 개발비용도 15% 절약 가능해져
정의선(오른쪽 두번째)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의 ‘고프로’ 전시장에서 가상현실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한스경제DB

[한스경제=강한빛 기자]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의 혁신경영이 가상공간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50억 원을 들여 VR(가상현실)을 통한 품평장을 설립했다.

18일 현대ㆍ기아차에 따르면 새로운 차량을 개발할 때 개발인력과 주요경영진이 품평회를 갖고 있다. VR 품평회장이 설립되기 전까지는 날짜를 정해 품평회를 갖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VR 품평시스템 도입 이후 VR 장비가 갖춰진 곳이면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해졌다. 화상회의를 하듯이 VR 장비를 통해 시스템에 접속하면 차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남양연구소를 비롯해 미국, 중국, 유럽, 인도 등 5곳의 글로벌 R&D 센터 연구인력도 개발현장을 찾지 않고 VR을 통해 품평회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디자인 부문은 유럽디자인센터, 미국디자인센터, 중국디자인센터, 인도디자인센터 등과 협업해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에서 차량을 디자인하고, 디자인 평가에 참여하는 원격 VR 디자인 평가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또 디자인 품평 외에 아이디어 스케치 등 초기 디자인 단계로까지 VR 기술을 점차 확대하고, 실제 모델에 가상의 모델을 투영 시켜 평가하는 AR(Augmented Reality) 기술도 도입하는 등 버추얼개발 프로세스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활용한 덕분에 글로벌 주요 R&D 센터 간 협업도 활발해졌다. 십여 시간 동안 항공기에 탑승해 한국으로 이동하지 않고서도 의견교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가상현실 품평시스템은 한곳에 모이지 않더라도 각기 다른 지역에서 시스템에 접속하면 된다. 사진=현대기아차

특히 정의선 수석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해외 출장에 나서더라도 VR 시스템이 갖춰진 글로벌센터에 방문하면 언제든 새롭게 개발된 차량을 살펴볼 수 있다.

현대기아차가 개발한 VR 시스템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활용한 외관 디자인 스케치 ▲가상의 공간에서 3D 스케치 및 모델링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들과 가상공간에서 디자인 협업 ▲가상현실 공간에서 차량 디자인 품평(EVALUATION) ▲시공간별 내·외관 디자인 적합성 검증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활용한 차량 설계구조 검증 ▲험로주행 시 안전성 확보를 위한 엔진룸 내 주요 부품 거동 검증 ▲연비향상을 위한 차량 내외부 공력 시물레이션 ▲차량의 공간감 및 조작 편의성 검증 ▲가상주행 및 시계성 검증 등이 가능하다.

현대기아차 가상현실 품평시스템은 디자인 뿐 아니라 적용된 설계구조 기술에 대한 검증도 가능하다. 사진=현대기아차

최근 출시한 기아차 K5도 VR 품평 시스템을 통해 개발 및 검증 절차를 거쳤다. 기아차는 지난해 6월 VR을 활용한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 그동안 시범 운영해왔다. 기존에도 디지털 차량 평가는 일부 진행됐지만 큰 화면을 통해 2D 환경에서 주행 화면을 보는 것에 불과해 실제 차량의 성능을 정밀하게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말 출시를 앞둔 제네시스 GV80도 VR 품평회를 통해 차량의 품질을 검토했다. 지난 11월 출시된 더 뉴 그랜저도 VR 품평회를 통해 주요 임원들과 R&D 인력들이 차량 전반을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품평회에 VR을 적용한 것은 정의선 수석 부회장의 의지가 강했다. 정 부회장은 가상체험을 통한 혁신을 꿈꿨다. 정 수석 부회장은 차량 품평을 위해 많은 인력이 한자리에 모이는 등 불필요한 요소가 많다는 내부의견에 VR 품평시스템을 고안했다.

현대차 가상현실 품평시스템은 최대 20명이 참여가 가능하다. 시스템에만 접속하면 되기 때문에 글로벌 5개 디자인센터에서 개발인력이 함께 참여해 디자인을 검토할 수 있다. 사진=현대기아차

지난 201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미국최대가전쇼(CES 2017)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VR 체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가상현실을 통한 내부시스템 변화를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지난 2년 동안 시스템 개발과 프로그램 혁신을 위해 개발진들과 머리를 맞대고 현장을 진두지휘했다는 후문이다.

가상현실 품평시스템은 차량의 크기 때문에 디자인 모델 검토에 애로사항이 많은 대형 상용차 개발에 유용하다. 현실공간에서는 차량의 크기가 문제 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크기와 부피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비용절감까지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 클레이 모델로 품평을 하면 클레이 모델을 하나 깎는데 시간과 비용이 소모됐다.

K5의 패스트백은 VR 설계 품질 검증 프로세스의 도움이 컸다는 설명이다. 사진=기아차

VR을 활용하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내외장 디자인이 합쳐진 디지털 모델을 보고 디자인을 품평하고 수정할 수 있어 소모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현대ㆍ기아차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완전히 도입될 경우 신차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VR 디자인 품평장은 20명이 동시에 VR을 활용해 디자인을 평가하는 게 가능하다.  정확한 디자인 품평이 가능하게 하는 건 VR 디자인 품평장 천장에 위치한 36개의 모션 캡처 센서를 갖추고 있다. 이 센서가 평가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정밀하게 감지해 평가자가 가상의 환경 속에서 정확하게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게 한다. 디자인 평가자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 차량의 부품, 재질, 컬러 등을 마음대로 바꿔보며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양희원 연구개발본부 바디기술센터장(전무)는 “현재 자동차 산업은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먹어 치우는 대변화와 격변의 시대에 있다”며 “현대기아차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변화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래 차에 대한 역량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VR 디자인 품평장”이라고 설명했다.

연말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제네시스 GV80도 현대차의 VR품평시스템이 개발에 적용됐다. / 제공=현대차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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