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더 이상 '탑골GD'는 없다. 세련된 패션에 멜로디에 몸을 맡긴 듯 자연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며 무대 위를 활보하던 가수. 낯선 얼굴에 '누구냐'며 궁금해하던 대중은 이내 그에게 '탑골GD'라는 별명을 붙여 줬고, 지금은 '양준일' 이름 석 자를 대중이 또렷이 기억하게 됐다.

■ 18년 만의 귀환… 양준일은 어디 있었나

1991년 '겨울 나그네'로 데뷔한 양준일은 이듬해 그 유명한 '가나다라마바사'가 수록된 '나의 호기심을 잡은 그대 뒷모습'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게 양준일의 이름으로 나온 마지막 앨범이었다. 무려 10여 년이 지난 2001년에 이르러서야 그는 V2라는 가명으로 새 앨범 '판타지'를 발표할 수 있었으나 V2로서의 활동도 더 이어지지 못 했다.

양준일은 샤이니의 '원 오브 원'(2016), 준의 '오늘밤은'(2019), 사무엘의 '캔디'(2017) 등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뉴잭스윙 장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그만큼 시대를 앞서갔다면 앞서갔고, 남들과 다르다면 달랐다. 2019년에 떨어뜨려놔도 이상하지 않을 옷차림에 영어 제목과 가사의 노래들은 1990년대 초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준일은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 "1990년대 활동 당시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비자 연장을 해 주지 않아 콘서트를 앞두고 한국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절치부심 두 번째 기회를 준비했으나 국내에선 양준일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결국 V2라는 가명을 쓰기에 이르렀다. 이후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바와 같다. 소속사로부터 여러 불공정 행위를 당해 끝내 재기에 실패했고, 경기도 일산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한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

■ '레트로 붐'이 소환한 양준일, '슈가맨3'로 확실한 충전 완료

스스로 "투명인간 느낌을 받을 때가 많고 내가 왜 존재하는지 모를 정도로 퀘스천 마크가 많았다"고 털어놓을 만큼 양준일은 한국 대중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양준일의 공백기 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굵직한 아이돌 스타들이 생겨났고,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가요계는 소위 'K팝'이라고 하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탑재한 아이돌형 음악 중심으로 재편됐다. 양준일이 국내에서 설 수 있는 무대는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국내 대중에게 소환된 건 '레트로 붐'과 맞닿아 있다. 시티팝, 뉴잭스윙 등 1980~199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고, 크롭톱이나 통이 넓은 바지, 져지룩 등 1990년대 패션 코드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누구보다 세련된 패션과 애티튜드를 구가했던 양준일이 수면 위에 올라오기 시작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점을 찍은 건 '슈가맨3'이었다. SBS '인기가요' 과거 방송 등이 온라인에서 다시 공개될 때까지만 해도 양준일의 존재감은 '탑골GD' 정도였다.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이어가기 여의치 않아 일산에서 영어 학원을 했다더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돌았지 실제 그가 가수로 활동하면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 후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들을 기회가 없었다. '슈가맨3'는 과거 브라운관 속에 갇힌 양준일이 아닌 2019년에 살아 숨쉬는 양준일을 소환했고, 그의 한결같은 겸손하고 긍정적인 태도는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 "대한민국이 날 받아줬다"

팬미팅 티켓이 오픈을 하자마자 동나고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만 했다 하면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양준일에 대한 인기는 그야말로 '신드롬급'이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고 할 만큼 양준일을 향한 최근 한국 대중의 정서는 오픈 마인드.

이런 신드롬급 인기가 형성될 수 있었던 데는 양준일의 '착한 심성'이 있다. 단순히 음악과 스타일이 세련됐다는 것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팬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심성'뿐이다.

양준일은 25일 방송된 '뉴스룸'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는 데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더 이상 나의 과거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포라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괄시를 받고 영어 가사가 많고 미국 문화에 익숙하단 이유로 문제아 취급을 받아야 했던 그는 그런 과거를 끄집어내 괴로워하고 원망하는 대신 지금이라도 받아준 한국에 "고맙다"고 하며 감격스러워 한다. 지난 1년 간 국내 가요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마약, 성범죄, 횡령, 도박, 권력과 유착 등)을 통해 대중은 '실력보다 인성'을 갖춘 아티스트들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됐고, 이런 타이밍에 양준일이 기가 막히게 재소환됐다. 몇 번의 실패를 거쳐도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 과거의 일에 대한 원망보다는 현재의 기쁨에 더 감사할 줄 아는 삶의 태도, 잘 살던 어린 시절,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팬들을 '친구'라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소탈함. 이 모든 것들은 최근 대중이 K팝 스타들에게서 쉽게 찾지 못 했던 것들이다.
 

한국에서 가수 활동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는 양준일을 위해 팬들은 적극적으로 각종 브랜드에 양준일을 모델로 기용해 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준일을 희화화하는 듯한 tvN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의 예고가 나가자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개그는 30년 전에 멈췄어야 한다", "사람 가지고 희화화하지 말아 달라"며 항의 글을 올렸다. 결국 이 장면은 본 방송에서 통편집됐다. 실력이 좋다면 인성은 어떠해도 상관없다던 시대가 가고 이젠 착한 사람의 성공을 바라는 대중의 바람이 커진 시대가 왔다. 양준일은 이런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함께 한국 대중 앞에 다시 섰다. 과거의 양준일을 기억하는 40~50대와 소위 '팬질'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10~20대가 '양준일'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집결했다. 누군가는 '반짝 인기'라 하지만 양준일에 대한 관심이 쉽게 식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이 외에도 충분히 많다.

양준일은 "하루, 하루가 좀 재방송 같은 느낌이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하루가 안 끝나고 계속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정말 만날 이게 꿈인가라는 얘기를 자꾸 하게 된다"면서 "시간이 되면, 또 여러분들이 나를 원하는 동안에는 (쏟아지는 제안들을) 다 해 보고 싶다"고 했다. 1991년에 데뷔한 가수가 2019년에 비로소 자신의 때와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JTBC, 위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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