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GDP 성장률 2% 힘겨운 '신3저' 침체 양상 지속할 듯
유동성 확대와 일부 지표개선으로 자산시장은 들썩

2020년에는 나라 경제와 우리집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려나?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으며 갖는 한결 같은 관심과 바람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새해 성장률은 2.4%로 2019년(1.9% 예상)보다 부쩍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반면 “경제가 침체를 넘어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문가도 적지않다.

뒤돌아보면 틀리기 일쑤인 게 경제전망이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제 전망 컨센서스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경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 놓는다. 때론 전망보다 더 악화시키고, 때론 되돌려 더 좋게 만들기도 한다.

경제 주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망일수록 잘 틀리는 이유다. 그래서 시장의 고수들이 경제 전망을 뒤집어보며 거꾸로 투자해 큰 수익을 얻곤 한다. 그럼 2020년 경제의 주요 이슈들을 한번 뒤집어 예측해 보자.

’기저효과’로 경제지표 소폭 개선 전망

국내외 경제 예측기관들의 전망을 모아보면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예측치는 2.1~2.3%로 수렴한다. 2019년(1.9~2.0% 예상)보다 약간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바닥을 찍었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의미있는 반등(U자형)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예상이 깔려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잠재성장률(2.6% 추정)에도 크게 못미친다.

새해 경제지표의 개선은 수출과 재정이 이끌 전망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완화되고 반도체 가격도 바닥을 탈출하면서 수출이 2~3%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수출이 10%나 줄어든데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매우 미약한 반등이다. 한국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진 까닭이다.

정부가 512조원의 수퍼예산(전년비 9.1% 증가)으로 재정을 쏟아붓는 게 성장률 하락을 저지하는데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경제가 회복하기는커녕 더 나빠졌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건설경기와 민간소비 등 내수가 계속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본격적으로 줄어들면서 내수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내수 부진으로 일자리 상황은 지난해보다 더 얼어붙을 것으로 우려된다. 취업자 증가폭이 20만명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수출 개선 등으로 경영에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그러나 신규 투자는 일자리를 오히려 줄이는 디지털화, 자동화에 초점을 맞출 공산이 크다.

초3저(성장,물가,금리 0%대)의 ‘제로 경제’

2020년 GDP 성장률은 수출 회복과 재정 확대에도 불구하고 2019년과 엇비슷한 1.8~2.0% 선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내수 민간 소비와 투자가 더욱 부진해지며 수출 및 재정 효과를 갉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정부 규제와 시장 개입, 반기업-친노동 정책은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를 해외로 집중하게 만든다.

재정 투입 효과(성장기여도 1%p 이상)를 뺀 민간 부분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0%대 후반에 머문다. 경제는 겨우 현상을 유지하는 침체의 터널로 더 깊이 빠져든다는 얘기다.

총수요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으면서 물가 상승률은 계속 0%대를 기록한다. 성장과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은행은 금리를 2차례 더 내려 현재 1.25%인 기준금리를 0.75%까지 인하한다. 성장과 물가, 금리가 모두 0%대인 초3저의 ‘제로 경제’가 현실화된다.

평균이 그렇다는 얘기지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누군가의 파이가 커지면 누군가는 잃는다. 그로 인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심해진다. 좀처럼 양보하고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정치권은 포퓰리즘에 빠져 편가르기를 조장한다. 통합의 정치는 실종되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갈수록 고갈된다. 한국은 ‘제로 경제’에 더해 ‘제로섬’의 수축사회로 본격 진입한다.

총선을 거치고 차기 대선이 점차 다가오면서 선동의 정치가 난무한다.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심해진다. 뭐든 남탓하는 사회풍토가 조성된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혁신과 창의, 도전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그래도 경제가 붕괴하는 위기는 없을 듯

극단적 비관론은 경제위기론을 낳는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처럼 경제가 붕괴할 것이란 경고다. 하지만 2020년에 당장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 경제가 종합적으로 ‘위기적 상황’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실제 경제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적 위기와는 다르다. 폭탄이 존재한다고 반드시 터지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기적 상황이 실제 위기로 전환하기 위해선 누군가 뇌관을 때려야 한다.

경제위기는 대부분 과잉 부채를 떠안은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못해 연쇄 파산하는 신용위기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부채 폭탄은 가계가 안고 있다. 정부와 기업 부문의 부채는 아직 안심해도 된다. 가계 부채는 1600조원에 육박해 거대하긴 하다. 하지만 스스로 터질 위험은 크지 않다. 여전히 조심해 살살 굴리면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외부에서 큰 충격이 가해지면 폭발할 수도 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과 중국의 부채위기, 북한 체제의 붕괴 등이다. 하지만 어느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지난해 피크를 쳤지만 2020년 2.1% 선으로 연착륙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성장률도 5.8% 선으로 둔화하지만 부채위기의 도화선은 정부가 관리해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기업 부채비율이 GDP 대비 150%를 넘어 심각한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향후 2~3년 정도는 정부가 더 틀어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북미 관계가 악화돼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타격한다면 경제가 대혼란에 빠지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크지 않다.

힘겹게 겨우 걷는 만성 성인병 경제

20여년 전 외환위기 때나 10여년 전 경제위기 때만 해도 한국 경제는 젊었다. 골절상을 입어 털썩 주저앉았지만 병상에 누워 뼈가 굳은 뒤 곧바로 다시 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경제는 구조적인 노화현상에 성인병을 앓고 있다. 고혈압에 당뇨에 관절염까지...

어디가 심각하게 부러져 당장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조심조심 걸을 순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구조개혁과 규제철폐 등으로 젊은 피를 수혈해 혁신 에너지를 불어넣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 구석구석 기득권자들의 반발로 기대하기 힘들다.

어쩌겠는가. 이것도 엄연한 현실이라면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제로 이코노미를 주어진 환경으로 인정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가는 게 정답이다. 과거 고도성장의 미몽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실수를 줄이는 상책이다. 그나마 국민소득 3만달러에 도달해 정체기로 접어든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정치가 발목을 잡는 한 경제는 재도약하기 힘들다. 정치가 변해야 경제도 달라진다. 2020년 총선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과잉 유동성으로 자산시장은 들썩일 수도

정부와 한국은행이 돈을 계속 푸는데 실물경제가 제자리 걸음이라면 돈을 어디로 갈까? 결국 증권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넘볼 수 밖에 없다. 다만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와 명분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2020년은 그런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자산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닥이 어딘지 모를 불확실성이다. 그런데 2020년 경제는 일단 바닥을 확인하고 미약하나마 회복을 모색하는 상황을 맞는다. 사람들은 안도하기 시작하고 자산 투자에 자신감을 되찾는다. 이 때 시장의 장사꾼들이 등장해 온갖 낙관론으로 투자를 권유한다.

국내외 증권사들은 국내 상장사들의 2020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20~30%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반등하긴 하겠지만 전체 기업 이익 평균이 그렇게 늘어난다고 보긴 힘들다. 그래도 일단 바람을 잡으며 호객 행위에 나선다. 나중에 아니면 말고다.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고강도 대출규제와 세금폭탄으로 일시 숨을 죽이겠지만 다시 상승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끊이지 않는다.

증시로 외국자본이 유입되고 경상수지도 다소 개선되면서 원화가치는 강세흐름을 보일 수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채권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다. 이래저래 자산시장은 한동안 두둥실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자산가격은 결국 실물경제의 펀더멘털과 보조를 맞추게 마련이다. 과잉 질주에 따른 거품은 언젠간 꺼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내년 국내 자산시장은 버블 형성기를 맞고 그 뒤 다시 꺼져 경제에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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