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데뷔 30년만에 신드롬... 첫 팬미팅 수 천 명 모여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10대로 돌아가서 내가 뭘 원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기억이 안 나요. 왜냐면 내가 그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20대, 30대, 40대, 50대에 원하는 것은 다 달랐어요. 지금  원한다고 그것을 영원히 원하는 게 아니고 내가 지금 원하는 걸 가졌다고 해서 완벽히 행복해져서 앞으로 더 원하는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50대에 비로소 과거 꿈 꿨던 K팝 스타가 된 양준일은 지난 해 12월 31일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을 앞두고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내가 더 이상 원치 않으니까 (K팝 스타라는 꿈이) 이뤄진 게 너무 신기하지 않느냐"며 웃었다.

1991년 데뷔해 벌써 데뷔한 지 30여 년이 됐지만 양준일은 단 한 번도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톱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다.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냈을 뿐이지만 영어 가사가 많다는 이유로 교포라는 이유로 가요계의 문제아 취급을 받았던 양준일.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냈던 노래 '판타지' 속 가사 "처음서부터 넌 좀 특이했어. 눈빛으로 대화하는 너의 얘기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어"라는 가사는 마치 한국 가요계에서 배척당했던 양준일이 느꼈던 바인 것 같기도, 그가 바라본 당시 한국의 풍경 같기도 하다.

어쩌면 한 번도 자신이 바랐던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았을 양준일은 그런 삶의 길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입국심사원이 허가를 내 주지 않아 예정됐던 공연의 티켓을 환불했던 일도 실은 관객들이 많지 않아 힘들지 않았다면서 "20대 때 이런 것(인기)을 누린 것보다 지금 이런 일을 맞이하는 게 백배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보였다.

최근 양준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거의 '신드롬급'이다. 그가 과거 악덕 연예 기획사와 만나 국내 활동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는 걸 아는 팬들은 직접 여러 브랜드들에 양준일을 모델로 기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물론 광고비나 출연료 등이 제대로 지급되는지까지 확인하고 나섰다. 양준일은 그런 팬들에 대해 "든든하다"고 했는데, 오히려 팬들은 미안하다고. 그 때 알아보지 못 한 게 미안하고, 그 때 힘들었던 사정을 미처 알아주지 못 해 미안하다는 것이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죠. 그런 많은 일들을 통과하면서 얻은 게 굉장히 많습니다. 한 순간도 버리고 싶지 않아요. JTBC '뉴스룸'에 나갔을 때 '머릿 속에 있는 쓰레기를 많이 버렸다'는 말을 했는데, 그 쓰레기 안에는 사실 소중한 보석들이 많이 숨어 있어요. 그 보석들을 찾아내서 그걸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지금 이렇게 많은 분들이 환영해 주잖아요. 그 덕에 옛날에 힘들었던 일들이 다 녹아내리는 느낌이에요. 팬들이 제게 미안해 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이윽고 이어진 팬미팅에서 양준일은 비로소 브라운관 넘어, 온라인 공간에서 살아 있던 팬들과 실제로 만났다. 첫 곡 '리베카' 무대 이후 세종대학교 대양홀을 가득 채운 약 2000명의 관객들이 크게 환호를 하자 양준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 동안 말을 잇지 못 하고 객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팬미팅의 사회를 맡은 김이나는 "원래 첫 곡 끝나고 양준일 씨가 퇴장하는 거였다. 역시 양준일 씨 답게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양준일 씨 답지 않나 싶다"고 했다. 끝내 양준일은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양준일은 이 날 팬미팅에서 '리베카'를 비롯해 '댄스 위드 미 아가씨', 'J에게', '판타지', '가나다라마바사' 등 과거 발표 곡들을 불렀는데, 이 노래들은 모두 팬미팅을 위해 재녹음 및 재편곡됐다. 뿐만 아니라 무대 의상에 기자회견 의상까지 의견을 내며 적극성을 보였다. 팬들은 케이크와 피켓 등을 마련하고 팬미팅이 진행된 100여 분 동안 큰 함성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양준일은 "여러분의 사랑이 파도처럼 나를 친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라며 감격스러운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팬미팅에서는 또 양준일이 직접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는 Q&A와 팬들의 고민에 대해 양준일이 대답해 주는 시간, 과거 실제 입었던 의상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등이 마련됐다. 양준일의 마지막 앨범이 나온 건 지난 2001년. 떨어져 있던 약 18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양준일과 팬들은 한 시도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고 호흡을 주고 받았다.

'그 가수에 그 팬'이라는 말이 있듯 현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역시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걸 아끼지 않았다. 양준일이 눈물을 보이자 누군가는 "울지 마"라고 외쳤고, 또 누군가는 "울어도 된다"고 위로했다. 1월 1일 근무로 간신히 스케줄을 바꾸고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40대 팬은 "(양준일이) 존재하는한 영원히 함께 가고 싶다. 옛날에 왜 미처 알아주지 못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알게 돼 다행이다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이야기했다. 이 여성은 팬들의 앵콜 요청에 양준일이 다시 무대에 오르자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 다른 20대 팬은 양준일이 울컥할 때마다 "어떡하냐"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며 힘든 일이 있었던 건 맞지만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 인생에는 늘 저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대해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노사연 누나, 민혜경 누나도 제게 참 잘해줬고 제니하우스 대표님도 절 많이 챙겨줬어요. 미국에서는 받지 못 했던 따뜻함이 대한민국에서는 띄엄띄엄, 꼭 필요할 적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과거를 이야기 해도 슬프지 않은 이유가 그거예요. 대한민국, 저를 따뜻하게 받아줘서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해요. 따뜻함과 지금의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팬미팅은 이 날 오후 4시, 오후 8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사진=임민환 기자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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