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생활체육' 전환기, 국가주의 산물 '선수촌' 명칭 사용해야할까
'엘리트→생활체육' 전환기, 국가주의 산물 '선수촌' 명칭 사용해야할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0.01.05 17:24
  • 수정 2020-01-05 17:24
  • 댓글 0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주의 산물인 '선수촌' 명칭 개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주의 산물인 '선수촌' 명칭 개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박대웅 기자] '체력은 국력이다.'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을 견인한 원동력을 가장 잘 요약한 말이다. 강건한 체력을 키워 민족의 저력을 세계무대에 떨쳐 국위를 선양하자는 기치 아래 1960년대부터 선진국 문턱에 이른 현재까지 한국체육은 척박한 땅을 기름진 옥토로 개척하며 세계 스포츠강국으로 우뚝 섰다. 중심엔 국가가 있었다. 철저한 국가적 관리시스템 아래 많은 선수들이 피땀 흘려 노력했고, 국민은 성원으로 보답했다. 그 결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한국은 공산권이 빠진 1984 LA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를 획득했다. 특히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고, 2018년에는 평창에서 하계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은 2016년 리우와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 지난 40여년간 동하계 올림픽에서 100개 이상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짧은 올림픽 출전 역사에도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를 냈다. 

선수촌 문화는 국가주도 체육 육성의 상징으로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체육 발전에 이바지했다. 연합뉴스
선수촌 문화는 국가주도 체육 육성의 상징으로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체육 발전에 이바지했다. 연합뉴스

◆'금메달의 요람' 선수촌

금메달의 요람은 단연 태릉에서 시작해 진천으로 이어진 선수촌 문화다. 선수촌은 시대의 산물이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이 스포츠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소련과 동독 등 공산주의 국가는 강력한 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올림픽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북한의 존재감은 한국에 큰 자극이 됐다. 당시 북한은 경제력과 함께 스포츠에서도 상당한 우위에 있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암울한 한국 체육의 민낯을 지켜본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은 국가체육주의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고, 1965년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 끝에 태릉선수촌 건립을 인가 받는다. 태릉선수촌은 1966년 육상장, 실내수영장, 실내체육관, 서키트 트레이닝센터 등 훈련장과 선수 숙소를 갖추고 국가대표를 양성했다.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1966년 12월 열린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14개 종목 182명의 선수를 파견해 금 12개, 은 18개, 동 21개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국가주의 산물인 태릉선수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1970년대 에버리 브런디지 IOC 위원장은 몇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끝내 태릉선수촌 방문 제안은 거절했다. 그는 아마추어 규정을 어기고 선수들에게 합숙과 강화훈련을 시키는 태릉선수촌의 운영 방식에 반감을 드러냈다. 

획일적이고 비자발적인 선수촌 운영방식은 크고 작은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87년 3월 역도 무제한급 이민우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씨름으로 전향하기 위해 훈련 중 태릉선수촌을 무단으로 이탈했다. 서울올림픽 성공에 총력을 기울였던 전두환 정권은 이미우에게 제명처분과 삼익가구 씨름단 입단도 불허했다. 이후에도 억압된 생활에 반발해 여유 있는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은 일부 선수들의 이탈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50여년간 한국체육의 요람이었던 태릉선수촌은 2017년 9월27일 정식으로 문을 연 진천선수촌에 바통을 넘겼다. 태릉선수촌과 진천선수촌의 가장 큰 차이는 환경이다. 총공사비만 5130억원이 들어간 진천선수촌 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 훈련장으로 결코 손색이 없다.

대지규모는 140만5797㎡(42만5254평)로 태릉선수촌의 31만696㎡(9만3958평)보다 4~5배가량 넓다. 건축연면적 역시 19만1298㎡(5만7868평)로 태릉의 9만1956㎡(2만7816평)보다 배 이상 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선수가 먹고 자는 숙소규모도 대폭 커졌다. 태릉선수촌에선 숙소가 3개동 292실밖에 되지 않아 최대 358명의 국가대표들만 머물 수 있었지만, 진천에선 1150명의 선수가 함께 훈련할 수 있다. 숙소가 8개동 823개실(1인실 500개, 2인실 323개)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훈련 및 부대시설 환경도 개선돼 국가대표들의 경기력 향상을 극대화했다. 

그럼에도 국가주도의 체육인 향성이라는 한계는 여전하다.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선수들이 존중 받는 선수촌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20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에 한창이다. 연합뉴스
2020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에 한창이다. 연합뉴스

◆'선수촌=국가대표 훈련장' 틀에서 벗어날 때

태릉선수촌의 명칭은 개촌 무렵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국가대표 선수 전용 훈련장 건립을 추진하면서 조직적이고 현대적인 국가대표 훈련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결정했다. 국가대표 훈련장임을 보여주기 위해 '태릉'이라는 장소에 '선수촌'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선수촌=국가대표 훈련장'인 셈이다.

2015년 대한체육회는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하며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한데 묶는 한국스포츠 사상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엘리트체육으로 일관했던 지난 수십년간의 운영체제만으로는 더 이상 국제스포츠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통합을 이끌었다. 실제 한국 체육은 메달밭이었던 복싱과 레슬링, 유도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고 양궁과 배드민턴 등 전통적인 강세 종목들에서도 다른 국가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거나 세계 정상을 내주고 있다. 

생활체육에서 우수 선수를 발굴해 엘리트체육으로 이끄는 선진국형 체육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국 체육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점에서 문을 연 진천선수촌이지만 여전히 국가주도 체육의 상징인 '선수촌'이라는 명칭은 버리지 못했다. 또한 집단주의에 근거한 강화훈련 등만을 고수하는 획일적인 훈련 방식도 여러 종목에서 목격할 수 있다. 

'체력은 국력이다'는 2020년 현재 시점에서 더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지난 반세기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체력은 체력일 뿐 국력의 척도가 아니다. 선수촌이라는 명칭 역시 국가가 선수를 적극 관리해 메달을 딴다는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이 국가대표 훈련장을 '트레이닝센터' 등 보다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공존, 스포츠 선진화 등 더 큰 목표를 향해 뛰는 한국체육이 '선수촌'보다 더 큰 틀에서 스포츠를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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