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에드리링턴·디아지오 잇딴 철수… 장기 불황에 쌍벌제 앞둬 ‘첩첩산중’
위스키가 떠난 자리에 와인이 시장 접수... 업계 "씨가 마른다" 하소연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 셰리오크12./에드링턴코리아 제공

[한스경제 김호연 기자] 맥주와 와인이 국내 주류시장을 이끌면서 위스키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장기 불황 등으로 인한 수요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출고가를 낮추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각종 규제가 연달아 시행되면서 속수무책이다. 잇따라 주요업체들이 국내 철수 및 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서 국내 위스크 시장 전반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1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에드링턴코리아는 장기 불황에 따른 위스키 수요 감소, 경영 악화, 강력한 정부 규제 등을 이유로 국내 법인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0일 임직원들에게 법인 철수 사실을 공지하고 일대일 면담 등을 통해 보상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수 시점과 향후 맥캘란 판권을 담당할 에이전시 업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에드링턴코리아는 맥캘란을 포함한 싱글몰트 위스키와 ‘스카이’, ‘스노우 레오파드’ 등 보트카를 수입·유통해왔다. 맥캘란은 소비자 인지도가 높고 마니아층이 제법 형성되어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장기간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위스키 소비가 급감했다. 여기에 정부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시행하면서 위스키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위스키 시장규모는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위스키 출고량은 10년 동안 꾸준히 감소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149만2459상자(9ℓ·500㎖ 18병 기준)가 팔려나가 전년 대비 6.2% 감소했다. 2008년 284만1155상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감소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위스키 업계는 자구책으로 출고가를 대폭 인하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상황을 극복하기엔 여건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위스키 업계 1위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해 경기도 이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올해 6월 공장을 완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1981년 이 공장에서 국내 생산을 시작해 39년 동안 수출용 ‘스미노프’, 군납용 ‘윈저’ 등을 생산해왔지만 경쟁력 저하와 실적 부진을 이겨내지 못했다. 작년 8월 ‘윈저 12년’ 등 6종의 출고가를 최대 20%까지 낮추며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업계 전체의 부진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왼쪽부터)‘골든블루 사피루스’, ‘팬텀 디 오리지널’, ‘팬텀 디 오리지널 17’, ‘팬텀 더 화이트’./골든블루 제공

업계 2위인 골든블루도 디아지오코리아와 같은 달 ‘골든블루 사피루스’ 등 제품 가격을 최대 30%까지 낮췄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올해 시행을 앞둔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비하고 침체된 위스키 시장에 활역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가지 사안을 검토하고 출고가를 인하했다”라고 설명했다.

드링크인터내셜도 자사에서 취급하는 ‘임페리얼 스무스 17년’ 등 주요 제품의 출고가를 15% 인하했다.

이처럼 업계가 전반적으로 시장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계속된 규제로 시장 활성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에 이어 올해 6월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위스키 시장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하소연이 업계 전반에 걸쳐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은 재활용하기 어려운 유색 페트병과 폴리염화비닐로 만든 포장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사용할 경우 네 가지 등급에 따라 환경부담금을 내도록 했다. 총 2년의 유예기간이 있지만 개정안에 따라 와인·위스키 업계는 현실적으로 용기를 대체하기 어려워 최대 30%까지 환경부담금을 징수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올해 6월에는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즉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을 앞두고 있다.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비용을 리베이트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판촉 활동 등에도 제약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위스키 업계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불만을 표시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인의 입장에서 정부의 규제를 거스르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라며 “상황을 지키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위스키 시장의 침체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내다봤다.

한편 위스키업체들의 자리에는 와인이 자리하고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와인 수입액은 2억3423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했다. 12월까지 합하면 연간 2억5000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돼 위스키를 밀어내고 ‘와인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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