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만연한 성적지상주의가 '조재범 성폭행 사태'와 같은 병폐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스포츠강국 대한민국 미래의 시작은 단연 학교체육이다. 학교체육의 활성화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유•청소년들에게 스포츠의 일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해 향후 한국체육을 이끌어나갈 우수한 선수를 육성하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 학교체육은 총체적 위기다. 학교운동부의 축소, 학생선수의 감소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며 학생들의 체육활동 수준 역시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다. 지난해 11월 세계보건기구(WHO)의 2016년 146개국 11~17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신체 활동량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학생의 운동부족 비율은 92.4%, 특히 여학생은 97%로 운동 부족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학교체육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 주-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활동 중인 어린이 모습. 연합뉴스

◆ 학교체육과 스포츠의 현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3•토론토), '손날두' 손흥민(28•토트넘), '한국축구의 미래' 이강인(19•발렌시아). 전 국민이 사랑하고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한국 스포츠영웅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씩 다른 성장 과정을 겪었다. 류현진이 전형적인 학생선수로 엘리트 체육인의 코스를 밟았다면 손흥민은 축구 감독인 아버지의 지도 아래 일찌감치 정규교육의 틀을 벗어나 축구 선수로 꿈을 펼쳤다.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보인 이강인은 초등학교 시절 축구 선진국인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고, 19세 이하 월드컵에서 최우수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많은 학생선수와 학부모 그리고 지도자들은 이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자신의 꿈을 키우거나 이뤄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중 대다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선수가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그 동안 해왔던 운동을 포기하기보다는 특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진학을 통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물론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중학교에서 이룬 각종 대회에서의 성적이 진학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오늘도 학생선수와 지도자들은 방과 후에도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수업권이 보장돼 있고 성적에 따른 출전 제한 제도가 있어 수업을 참여할 수 있고 또 해야하지만 많은 학생선수들은 진학이라는 일생 일대의 기로 앞에 부담스러워 한다. 학생선수들에게 운동이 아닌 새로운 분야로 진학이나 진로는 남의 이야기처럼 동떨어진 분야일 뿐이다. 운동과 관련한 진학이나 진로에 실패하면 이들의 행선지는 도태다. 그래서 대회 출전과 성적 향상에 몰두한다. 그럴수록 지도자와 학생선수의 위계관계는 강화된다. 학생선수의 진로와 진학이 성적으로 결정되는 성적 지상주의 시스템의 어두운 민낯이다. 

◆ 지도자는 왜 성적지상주의로 내몰까
 
운동부 지도자는 교육자일까, 아니면 학생선수의 기량 향상을 돕는 기능인일까. 현실은 이중적이다. 지도자에게 교육자로서 가치를 요구하면서도 현실적 처우는 그에 못 미친다. 대다수 운동부 지도자는 정규직으로 근무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수도 학교 예산이 아닌 별도의 기부 예산으로 지급 받는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셈이다. 재계약 또는 직무연장의 중요한 척도는 대회 성적이다. 대회 성적에 따라 어느 프로 팀에 혹은 어느 고교나 어느 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켰는가가 직무 연장이나 재계약을 위한 조건의 주요 지표가 된다. 
 
강한 압박 속에 지도자들은 학생선수들에게 규율을 강제한다. 한 사람의 개인행동이 결국 대회성적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대회 성적이 곧 지도자의 처우와 연계되기에 지도자들은 대회를 앞두고 늦은 시각까지 훈련을 강행하고 기숙훈련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한다. 이런 부분은 지도자와 학생선수 그리고 학부모 간 '스트레스'와 '갈등', '마찰'의 원인이 된다. 학생선수의 진로나 진학을 보장하기 위해서 결국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리게 되는 현재 시스템에서 지도자는 교육자가 아닌 기능인으로 학생선수를 내몰 수밖에 없다. 
 

농구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연합뉴스

◆ 학교체육 문화, 어떻게 바꿔야 할까
 
최근 불거진 학교체육과 스포츠계의 위법적인 행위들은 깊게 박힌 타율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부 지도자와 선수의 위법적 행동들의 책임은 물론 개인의 어긋난 윤리의식과 인권의식에 근거하지만, 성적지상주의 시스템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승자 독식의 스포츠문화에 대한 처방전과 치료는 없는 걸까. 
 
지금까지 엘리트 스포츠 문화는 성적 또는 기능 수준이 진학과 진로의 모든 것을 결정해 왔다. 대회성적만으로 정할 수 없는 학생선수를 모두 판단할 수 있다는 오판을 해온 셈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스포츠문화를 좀 더 성숙하고 세분화해 스포츠 분야의 진로와 진학을 다양하게 하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수업권 보장'과 '성적에 따른 출전 제한' 제도는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 수 있다. 여기에 스포츠계 내•외부의 공감을 확산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및 자격 체재를 확립해야 한다. 스포츠계 다양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예산과 정책적 뒷받침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선수와 학부모, 지도자, 학교 그리고 체육계가 함께하는 변화와 혁신 노력도 중요하다. 최근 들어 스포츠계의 타율문화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도자나 상급자 혹은 상급생의 위법 행위가 나올 때마다 '이번만큼은 변화하자'고 다짐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디다. 학생선수와 학부모는 진로와 진학이, 지도자와 학교는 그 동안 쌓아왔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주저한다. 체육계는 내부구성원의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소극적이다.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법이다. 내부 구성원의 자발적인 변화 의지와 노력이 학교체육 정상화의 첫 걸음이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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