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1941년 스물이 갓 넘은 청년 신격호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수중엔 단돈 83엔 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79년이 지난 2019년. '흙수저' 신격호는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기업가로서 자랑스럽게 이름을 남겼다. 이 기간 동안 신격호 명예회장은 자신이 창업한 롯데를 대한민국 재계서열 5위까지 끌어 올렸다. 그런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영면에 접어 들었다.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이었습니다."
 
'관광입국 대한민국'을 위해 신격호 명예회장 남긴 유산들을 재조명했다.

1978년 소공동 롯데호텔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가운데) 모습. 롯데그룹

◆ 관광보국 신념 대규모 투자로 이어져

신격호 명예회장은 관광산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 관광보국(觀光報國) 신념으로 투자 회수율이 낮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관광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관광으로 국력을 키우고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소신은 국내 최초로 독자적 브랜드 호텔을 짓게 했다.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조성과 국내 최고층이자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랜드마크 건설이 이어졌다.

◆ 신격호, 국내 첫 브랜드호텔 롯데호텔 품다

롯데호텔의 전신은 반도호텔이다. 반도호텔은 1936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상업호텔로 군수업으로 돈을 모은 일본인 신흥재벌 노구치 시다가후가 지상 8층 규모로 지었다. 광복 후 소유권을 넘겨 받은 정부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1967년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호텔 인수를 타진했다. 당시 호텔 사업 경험이 전혀 없던 신격호 명예회장은 인수를 망설였지만, 관광보국이라는 신념 아래 호텔이 관광산업 진흥에 엄청난 보탬이 될 것이라고 보고 호텔을 맡기로 결심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73년 반도호텔 인수 때부터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 결심을 했다. 그래서 반도호텔 인수 조건으로 정부에 '당시 31층이던 삼일빌딩보다 높은 45층으로 지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법령이 41층 이상의 고층 빌딩은 허용하지 않아 결국 37층으로 건설하게 됐다. 롯데호텔은 1975년 착공돼 1978년 완전 개관했다. 이때 높이는 14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았다. '초고층'과 '랜드마크'라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신념은 이후 롯데월드타워로 이어졌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전경. 롯데월드

◆2억 명이 찾은 신격호의 꿈 '롯데월드'

30년 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은 허허벌판이었다. 한강의 유수지로 우기 땐 범람을 걱정하던 곳 중 하나였다. 이 곳에 신격호 명예회장은 자신의 꿈을 담아 롯데월드를 지었다. 지난해 30주년을 맞은 롯데월드의 누적입장객은 지난해 1월 기준 1억7154만1000명에 달한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진 롯데월드를 건설하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6500억 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라는 타이틀을 걸고 1989년 7월 12일 문을 열었다. 어트랙션 18종, 캐릭터 수 14종에 불과했지만 30년 만에 어트랙션 수는 3배, 캐릭터 수는 5배 늘었다.
 
롯데월드 건설에 재밌는 후일담이 있다. 지금이야 잠실에 2호선과 8호선이 지나고 수많은 버스가 거쳐가지만 롯데월드가 들어설 당시만 해도 도심과 떨어진 공터인 만큼 사업성이 좋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또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날씨 탓에 실외 테마파크 운영이 어렵다는 회의론도 있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월드를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만들어 보자며 돌파구를 제시했다. 날씨의 영향을 극복하고 세계 최대 규모로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을 창조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고 1989년 7월 실내 테마파크인 '어드벤처'가 먼저 오픈하고, 석촌호수를 메워 만든 '매직 아일랜드'는 1990년 3월 모습을 드러내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특히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 등을 본떠 만든 '로리'와 '로티' 두 캐릭터를 내세워 스토리를 입히기도 했다.

◆ 필생의 숙원, 123층 롯데월드타워

1987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선언하며 대지를 매입했다. 이어 1994년 12월 제2 롯데월드를 100층이 넘는 대형 타워(지상 108층·450m)로 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순탄하지 못했다. 1998년 외환위기에 건설이 보류되고 성남 서울공항의 군용 항공기 이착률 안전 문제로 인해 번번이 막혔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투자 규제 완화 정책으로 2009년 인허가를 받아 공사가 진행됐다.
 
마침내 프로젝트 시작 30년 만인 2017년 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555m, 123층 건물이다.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높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갈등 속에서도 쇼핑몰과 호텔, 전망대 등을 넣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결과 쇼핑몰과 6성급 호텔인 시그니엘 서울, 오피스텔 시그니엘 레지던스, 전망대인 서울스카이를 비롯해 문화복합시설 포디움 등이 월드타워에 자리했다. 바로 옆 롯데월드몰과 에비뉴엘에는 면세점과 갤러리, 콘서트홀, 복합 쇼핑몰을 넣었다.
 
빌딩 디자인도 숱한 부침을 겪었다. 1987년 첫 구상 후 30여 년 동안 도면은 모두 17번 바뀌었다. 2010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지만 주변 잠실 일대 교통 체증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롯데는 롯데월드타워를 짓기 전 100억 원을 투입해 잠실역 확장 개선 공사를 했고, 여러 가지 우려 속에 2016년 말 1255억 원을 들여 지하 잠실광역환승센터를 추가로 개통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롯데월드타워는 2017년 4월 2일 개장 후 지금까지 1만5000명을 상시로 일하게 하는 고용창출 효과를 실현 중이다. 동시에 연간 4조30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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