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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송진현] 대규모 고객 손실을 초래한 해외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와 관련한 CEO 징계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우리-하나은행 간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금감원은 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과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부회장의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16일 첫 제재심의위원회(제제심)를 개최했다. 그런데 제재심에서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결론 도출에 실패했다. 금감원은 오는 22일 두 번째 제재심을 열 계획이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두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가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은 1차 제재심에 각각 수명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출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소명하며 금감원의 중징계 통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금감원은 제제심에 앞서 내부 논의를 거쳐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한 상태다. 금융당국 4명과 민간인 5명이 위원으로 참가하는 제재심에서 손태승 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가 문책경고로 결론날 경우 당장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되는 손 회장 거취에 변수가 될 수 있다. 함 부회장도 문책경고가 확정되면 차기 하나금융지주 회장 도전이 불가능하게 된다.

금감원은 이번 DLF 사태와 관련해 CEO 문책 근거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상의 내부통제 기준 위반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 법률 24조는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하여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시행령에서는 내부통제가 실효성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업무의 분장 및 조직구조를 갖출 것 등 구체적 내용을 예시하고 있다.

DLF 사태 전개 과정에서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이 이같은 법률상 내부통제 기준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엄중히 그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금감원의 논리다.

반면 두 은행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기준과 관련해 이를 위반했을 경우 CEO를 징계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중징계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소홀히 해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를 유발하는 등의 경우 임원을 제재해야 한다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과연 금감원과 두 은행 중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이와 관련해 감사원이 지난 2017년 금융감독원을 감사한 뒤 발표한 자료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감사원은 당시 금융감독원의 제재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행정규제기본법 4조 1항에 따르면 행정규제는 법률에 근거하여야 하고 그 내용은 구체적이고 명확하여야 한다고 감사원은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이번 케이스와 비슷하게 당시 구은행법과 구보험업법에서 금융회사가 내부통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만 했을 뿐 내부통제 기준이 제재사유로 규정되고 있지않은 점을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따라서 내부통제기준을 근거로 제재 필요성이 있을 경우 금융관련업법에 구체적이고 적절한 근거를 마련한 뒤 제재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DLF 사태와 관련해서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 기준을 위반했을 경우 CEO를 제재 해야한다는 명확한 조항은 없다. 감사원의 금융감독원 감사결과에 비춰 두 은행 측의 CEO 제재 근거 부족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금융감독 당국에선 금융회사 CEO를 상대로 어떤 징계를 가할까?

미국 감독 당국에선 보다 유연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서브프라임사태 때 JP모건이 불량한 자산유동화증권을 “우량하다”고 속여 팔았던 것과 관련해 미국 금융감독 당국에선 2013년 13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대신 JP모건 제이미 다이먼 회장에겐 연임을 제한하는 등의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지난 2007년 회장에 오른 이후 크고 작은 금융사고에 시달린 JP모건의 다이먼 CEO는 지난 2013년에 이어 2018년에도 5년 임기의 연임에 성공했다. 미국에선 거액의 벌금을 물리는 대신 이사회가 CEO를 지지하는 한 금융회사 CEO를 자리에서 쉽게 쫓아내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금융 사고에 따라 피해를 입게 된 고객들에 대한 보상 노력도 금융회사 징계 시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감독 당국이 CEO 징계에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CEO의 임기가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에 기초한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은 전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DLF 상품 불완전 판매로 선의의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수많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CEO 입장에선 언제 어떤 상품에서 사고가 터질지 몰라 한 없이 위축된 경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특정 사안에 대해 CEO에게 제재를 내리기 위해서는 감사원의 지적처럼 금융감독 당국은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규정을 마련해 제재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금융권에선 이번 DLF 사태에 대해 한국 자본시장의 성장과정에서 빚어진 ‘성장통’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금감원 제재심의 위원들은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이번 두 은행의 CEO 제재심에서 명확한 법적 근거에 따라 최종 결정을 내리길 기대해 본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현재 금감원의 분쟁 조정결과에 따라 성실히 DLF 피해 보상에 임하고 있는 점도 이번 제재심에서 간과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스경제 발행인>

송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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