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LPGA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정상급 골퍼들은 공통적으로 훈련의 강약조절을 잘한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예민한 종목이라 사소한 훈련 루틴의 변화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강약조절을 가장 잘 하는 선수 중 한 명은 바로 ‘골프여제’ 박인비(32)다. 그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과 대회 2연패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새해부터 홀컵을 정조준하고 있다. 시작은 나름 성공적이다.

◆2020시즌 개막전 ‘절반의 성공’

박인비는 20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 부에나 비스타의 포시즌 골프 앤 스포츠 클럽 올랜도(파71ㆍ6645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20시즌 개막전 다이아몬드 리조트 챔피언스 토너먼트(총상금 120만 달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2개와 보기 2개를 묶어 이븐파 71타를 적어내 최종합계 13언더파 271타를 기록했다. 하타오카 나사(21ㆍ일본), 가비 로페스(27ㆍ멕시코)와 동타를 이루고 197야드인 18번홀(파3)에서 연장 혈투를 벌였지만, 투어 통산 20승째 달성은 아쉽게 다음 기회로 미뤘다.

박인비가 투어 1월 대회에 나선 건 지난 2016년 이후 4년 만이다. 시즌을 일찌감치 시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올림픽 출전 때문이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6월 말 기준 세계랭킹에서 15위 이내, 한국 선수 중에서는 4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그는 대회 전까지 세계랭킹 16위로 한국 선수 중에선 고진영(1위), 박성현(2위), 김세영(5위), 이정은(7위), 김효주(13위)에 이어 6번째에 자리했다.

현재 세계랭킹 포인트를 고려했을 때 고진영(9.15점)과 박성현(6.51점)의 올림픽 출전이 유력한 가운데 김세영(5.48점)과 이정은(5.33점), 김효주(4.35점), 박인비(4.10점)가 남은 티켓 2장을 놓고 살얼음판 경쟁을 벌이고 있다. 4명의 급간 점수 차이가 1점 미만에 불과해 전반기 승수에 따라 순위가 뒤집힐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랭킹 포인트 가점이 높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단번에 순위표위로 올라갈 수 있다.

지난해 12월 중하순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짧고 굵게 전지훈련을 다녀온 박인비는 오는 6월까지 투어 15개 이상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시즌 초반 5개 대회 중 4개 대회에 나서 집중적으로 우승에 도전할 예정인데, 그 시작이 준우승이라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는 평가다.

◆간절히 바라는 ‘어게인 2016년’

박인비는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어머니 김성자 씨도 놀랄 만한 특별훈련을 실시했다. 박인비의 백스윙 자세는 독특하다. 일단 ‘코킹(손목 꺾음)’이 적고 백스윙 속도 자체가 느리다.

박인비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어떻게 힘을 공에 잘 전달할까 혼자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찾아낸 스윙 리듬이다”라고 털어놨다. 어렸을 때부터 손목의 견디는 힘이 다른 부분에 비해 약했던 그는 훈련 역시 하루에 수백 개씩 공을 치는 식으로 하지 않았는데,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는 두 달 간 이례적으로 살인적인 훈련량을 보였다. 리우 올림픽 매 라운드 후 손가락에 얼음찜질과 마사지를 받을 정도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골프여제’임을 입증했다.

올림픽을 향해 다시 한번 쾌속 질주를 시작한 박인비다. 그는 이번 대회 전 "리우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제가 L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며 "리우 대회 전엔 올림픽이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니는지 몰랐지만 경험해 보고 나니 그 위력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대회 후 그는 “올해 첫 대회였고 결과가 다소 아쉬웠지만, 3라운드까지는 내용이 좋았다"며 "자신감을 많이 얻은 대회였다"고 돌아봤다.

박인비의 전반기 우승 여부는 길어진 코스에 대한 효율적인 공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대회 코스가 길어지면서 롱 아이언이나 하이브리드로 쳐야 하는 상황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박인비의 우승 시계가 2018년 3월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 이후 멈춘 원인이다. 아울러 승부처에서의 정확한 판단과 위기 관리도 필요해 보인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 3차 연장에서 1, 2차 연장 때에 비해 공격적인 티 샷을 했지만 끝에 드로가 걸리면서 효과적인 그린 공략에 실패했다.

박인비가 전반기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며 도쿄 올림픽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한희원(42) JTBC 골프 해설위원은 “이번에 우승을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오랜만에 1월 첫 대회에 출전해서 이정도 성적을 냈다는 건 좋은 시작이라 볼 수 있다”고 낙관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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