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KCC, 21일 오리온전 마친 뒤 전광판에
귀화선수 라건아 위한 응원 메시지 띄워
구단 관계자 “라건아, 고맙다고 감사 표시”
전주 KCC 이지스 센터 라건아. /KBL

[한국스포츠경제=이상빈 기자] ‘We love 건아!’

21일 전주 KCC 이지스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4라운드 경기가 끝난 전주체육관 전광판에는 한 사람을 위한 문구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KCC 소속 국내 1호 귀화선수 라건아(31ㆍ본명 리카르도 라틀리프)다. 최근 일부 몰지각한 농구팬의 인격 모독 메시지로 고통을 호소하던 그를 위로하고자 KCC 구단이 마련한 이벤트였다. 경기장에 남아 있던 팬들도 라건아에게 힘찬 박수로 힘을 북돋워 줬다.

라건아는 지난 한 주간 프로농구를 뒤흔든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가 15일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받은 팬들의 인종 차별 메시지를 공개하자 이튿날 브랜든 브라운(35ㆍ안양 KGC 인삼공사)도 입에 담기 힘든 욕설 피해 사례를 털어놨다. 이 같은 폭로로 국내 무대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기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벌어지는 행태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온 이들에게 돌아온 건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퍼부어진 온갖 차별적인 언사였다.

라건아는 2018년 특별 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 더 많은 인종 차별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경기에서 지면 정도가 더 심했다. 심지어 아내와 딸을 향한 부적절한 표현도 있었다. 가장인 그가 참다못해 폭발했다. 그의 폭로와 함께 프로농구에 만연한 외국인 차별 문제가 불거졌고, KBL의 관련 규정 신설 검토가 이어졌다.

라건아는 2018년 특별 귀화로 한국 국적을 얻었다. 이후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맹활약을 펼쳤다. /KBL

19일 올스타전 브레이크 이후 재개한 첫 번째 프로농구 경기에서 라건아는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했다. 22점 13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이 오리온을 96-83으로 꺾는 데 이바지했다. 득점은 양 팀 통틀어 최다였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상황에서도 맹활약하며 팬들에게 승리 기쁨을 선물했다. 경기 뒤 자신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지자 크게 감동했다. “많은 팬의 응원을 받았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사과하는 팬이 있었다. 경기 뒤 따뜻한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털어놨다. 그는 폭로 이후 악성 댓글이 한 차례밖에 달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팬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팬들이 보듬어준 것이다.

오리온전을 마친 뒤 KCC 구단이 준비한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선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팬들이 소속 선수를 향한 애정을 갖게 하는 멍석도 깔았다. KCC 홍보팀 관계자는 21일 본지에 “큰 이벤트는 아니다”고 밝히며 뜻깊은 결과에도 겸손하게 반응했다. 이어 “올 시즌엔 경기가 끝나고 선수가 나와서 노래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동안 다채롭게 행사를 준비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게 됐다”며 “최근 인종 차별 메시지로 논란이 있었다. 선수에게 힘을 북돋워 주고자 기획했다. 팬들도 경기 종료 뒤 전주체육관 밖을 나가는 상황에 선수에게 박수로 화답했다”고 설명했다. ‘라건아의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좋아했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감사 표시를 했다”고 답했다.

한편 KBL은 17일 해외 국적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불특정 다수의 소셜미디어 인종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선수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10개 구단 귀화(라건아, 전태풍 등) 및 외국인 선수를 대상으로 모든 인종 차별 피해 사례를 조사한 뒤 법적 조치할 방침이다. 아울러 전 구단과 함께 스포츠 팬들의 건전한 프로농구 관람 문화 정착을 위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홍보 활동도 병행할 계획이다. 또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환경 조성을 위해 KBL 제도 및 규정 정비도 진행한다.

이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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