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선수→은행원→명장'... 김학범 감독의 파란만장 인생역정
'무명 선수→은행원→명장'... 김학범 감독의 파란만장 인생역정
  • 박종민 기자
  • 승인 2020.01.27 18:02
  • 수정 2020-01-27 18:02
  • 댓글 0

김학범 U-23 대표팀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사상 첫 대회 우승에 성공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범 U-23 대표팀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사상 첫 대회 우승에 성공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김학범(60) 23세 이하(U-23) 청소년 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계 대표적인 ‘비주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다시 한 번 성공 신화를 쏘아 올렸다.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역대 첫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대표팀은 26일(이하 한국 시각)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대회 결승에서 연장 후반 8분 터진 정태욱(23ㆍ대구FC)의 결승 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기고 역대 첫 전승 우승(조별리그 3경기ㆍ8강ㆍ4강ㆍ결승)의 신화를 작성했다.

◆비주류에다가 ‘은행원’ 이색 경력까지

김 감독은 경기 후 “이번 대회는 정말 어려웠다. 대표팀은 (올림픽 축구 9회 연속 본선 진출과 대회 첫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며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모든 선수에게 뛸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우리 선수들이 장차 A대표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승 비결을 두곤 “팀에 특출난 선수가 없다. 그래서 한 발짝 더 뛰고 희생하는 ‘원팀’ 정신이 필요했고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힘주었다.

현영민(41) JTBC 축구 해설위원은 27일 “선수들이 많은 땀을 흘리고 노력을 해 팀이 결실을 맺으면서 ‘김 감독은 다 계획이 있구나’란 생각을 들게 했다. 우승이라는 결과뿐 아니라 대회 나선 팀 중 최다 득점을 해냈다”고 돌아봤다. 현영민 위원은 특히 “사실 팀에 걸출한 스타플레이어가 없었고 중국과 1차전(1-0 승)을 어렵게 치르면서 대회에서도 험난한 여정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그걸 바꿨다”라고 짚었다.

특출난 선수들이 없는 팀 상황에서 일군 값진 신화였다. 따라서 김 감독의 성공은 축구계 지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서울 후암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다. 축구부에 들어가면 숙소에서 생활해 의식주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게 잡초 같은 축구 인생의 서막이었다.

김 감독은 명지대를 졸업한 후 1984년 실업팀 국민은행에 입단했다. 포지션은 스위퍼를 맡았다. 1991년까지 선수로 뛰었지만 무명에 그치며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축구화를 벗은 그는 국민은행 퇴계로지점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은행실무 경험이 많지는 않다. 1992년 퇴계로지점에서 6개월을 근무했고 이후 본점 영업2부에서 7개월간 일했던 게 전부다. 물론 능력만큼은 인정 받았다. 당시 책임자 시험에 합격해 대리 발령을 받았고 이후 과장으로 승진했다. 현역 축구선수가 대리 발령을 받은 것은 전 금융기관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는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불철주야 공부에 매진했다. 예금모집 실적 부문에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부하는 감독’과 ‘명장’으로 재탄생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축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국민은행 코치로 지도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U-23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2년 뒤 성남 일화 천마 수석코치가 된 그는 2001~2003년 팀의 K리그 3연패에 공을 세웠다. 2005년 감독으로 승격해 2006년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김 감독은 그 해 모교 명지대에서 운동생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국내 1호 축구 선수 출신 박사가 됐다. 그는 휴식기가 되면 사비를 이용해 남미, 유럽 등에서 선진 축구를 공부했다. 그에게는 ‘공부하는 감독’ 또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명장 알렉스 퍼거슨(79)을 빗댄 ‘학범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2010년부터 허난 젠예(중국), 강원FC, 성남FC, 광주FC를 차례로 거친 김 감독은 2018년 3월 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다만 시련은 찾아왔다. 그 해 8월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와일드카드로 옛 제자 황의조(28ㆍ지롱댕 드 보르도)를 발탁하면서 병역 혜택을 주기 위한 ‘인맥 축구’를 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황의조가 대회 득점왕(5경기 8골)을 차지하면서 그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김 감독의 선수 보는 안목이 훌륭했던 셈이다.

과거 만났던 한 축구 관계자는 김 감독을 두고 “굉장한 학구열을 지니고 있어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매년 발전할 수 있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전술적인 판단력과 실력은 물론 겸손한 인성까지 갖춘 국내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실제 성남 감독 시절 현장에서 봤던 김 감독은 경기에서 질 때면 홈 팬들에게 사과부터 하고 패인을 분석한 후 오답노트 고쳐가듯 팀을 바꿔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만큼 늘 배우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으며 책임감까지 갖췄다.

김 감독의 시선은 이제 7월 열리는 도쿄 올림픽을 향해 있다. 그는 “지금 올림픽 목표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라면서도 “그래도 한국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이번에는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하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묵직한 그의 한 마디에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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