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열정맨' 코비 브라이언트가 1998년 방한해 남긴 메시지(영상)
'NBA 열정맨' 코비 브라이언트가 1998년 방한해 남긴 메시지(영상)
  • 박종민 기자
  • 승인 2020.01.27 21:11
  • 수정 2020-01-28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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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코비 브라이언트. /NBA 페이스북
고(故) 코비 브라이언트. /NBA 페이스북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고(故) 코비 브라이언트를 사랑했다. 그는 나에게 형제와 다름없었다.” (마이클 조던)

조던(56)이 롤 모델이었던 소년은 농구에 미쳐 살았다. 1978년생으로 미국 펜실베니아주 로워메리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프로농구(NBA)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올스타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공을 다리 사이로 빼내는 ‘비트윈 더 레그(Between The Leg)’ 덩크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덩크왕에 오른 소년은 이후 약 20년간 코트를 누비면서 조던의 상징적인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조던의 69득점을 넘어 단일 경기 최다 득점 역대 2위 기록(81득점)을 세웠고, 통산 3만3643점을 올리며 또 한 번 조던의 기록(3만2292점)을 돌파했다.

◆‘조던 다음’ 전설의 슈팅 가드 코비

소년은 바로 27일(이하 한국 시각)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브라이언트다. 그는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중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서쪽으로 65㎞ 떨어진 칼라바사스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숨을 거뒀다. 헬기에는 브라이언트와 그의 둘째 딸 지안나(13) 등 9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다.

브라이언트는 NBA 역사상 조던 다음으로 위대한 슈팅 가드로 꼽힌다. NBA 선수 출신인 조 브라이언트(66)를 아버지로 둔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6년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의 지명을 받은 뒤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돼 2016년 은퇴할 때까지 레이커스에서만 뛰었다.

NBA 우승만 5차례를 했으며 파이널 최우수선수(MVP) 2회, 정규리그 MVP 1회, 올스타 MVP 4회, 득점왕 2회 등 다른 이력들도 화려하다. 그의 등번호 ‘8번’과 ‘24번’은 구단으로부터 영구결번 처리됐다. 그는 국가대표로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나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브라이언트가 고인이 된 날은 공교롭게도 과거 함께 포스트 조던 후보로 꼽히던 빈스 카터의 43번째 생일이었다. 카터와 트레이시 맥그레이디(41), 앨런 아이버슨(45) 등 당대를 주름잡던 선수들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을 남긴 브라이언트는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세상을 등졌다. 치열하게 경쟁했던 후배 르브론 제임스(36)가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통산 득점 기록을 넘어선 다음 날이기도 했다. 제임스는 전날 열린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전에서 29득점을 올려 통산 3만3655점이 되면서 브라이언트의 기록을 12점 추월하고 이 부문 3위로 도약했다. 브라이언트는 트위터에 "'킹 제임스'가 농구를 계속 진전시키고 있다. 내 형제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기뻐했지만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치열하게 ‘꿈꾸고 노력했던’ 지난 42년

참담한 비보에 스포츠계는 물론 각계각층이 충격에 빠졌다. NBA 역대 득점 1위인 카림 압둘자바(73)는 "브라이언트를 한 명의 운동 선수 이상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브라이언트와 각별한 관계였던 카이리 어빙(28ㆍ브루클린 네츠)은 충격으로 이날 뉴욕 닉스전에 결장했다. NBA 경기장에선 경기 시작과 함께 양 팀이 각각 공격 시간 24초를 그대로 소진하는 보기 드문 광경도 벌어졌다. 추모의 의미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프다”고 했다. 브라질 축구 스타 네이마르(28ㆍ파리 생제르맹)는 릴과 리그앙(1부) 21라운드 후반 7분 페널티 킥으로 골을 넣은 뒤 양손에 각각 손가락 2개와 4개를 들어 올려 브라이언트의 등번호 '24번'을 표시한 후 기도했다. 도널드 트럼프(74)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끔찍한 뉴스다. 브라이언트는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중 한 명이며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려 했다. 그는 가족을 정말 사랑했고, 미래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브라이언트는 데뷔 초기였던 1998년 8월 한국을 찾아 아디다스가 주최하는 3 대 3 농구대회에서 덩크 시범을 선보이며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브라이언트의 지난 42년 인생 또한 그 과정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