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호의 우승으로 끝난 2020 AFC 아시안컵 U-23 대회의 공인구로 일본 회사 몰텐의 공이 사용됐다. 몰텐 제공 

[한스경제=박대웅 기자]'재팬 머니'가 축구판을 흔들고 있다. 중동의 '오일 머니'가 일부 대부호의 현실판 '에프엠(FM•풋볼매니저)' 성격이 짙다면, 재팬 머니는 지금까지와 다른 축구계의 새 판을 짜는데 쓰이고 있다.
 
◆ 김학범호 우승과 함께한 일본 몰텐사의 AFC 공인구
 
재팬 머니의 영향은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품은 김학범호의 성과 속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학범호는 지난달 26일(한국 시각)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 아라비아와 2020 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1-0으로 이겼다. 2014년 대회가 시작된 이래 한 번의 준우승(2016년)과 두 번의 4위(2014년•2018년)를 기록했던 한국은 4번째 도전 만에 정상을 밟았다. 
 
조별리그 포함 6전 전승으로 우승한 김학범호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공인구는 일본 히로시마에 본사를 둔 몰텐사의 'Vantaggio 5000'이다. AFC는 2018년 11월29일 "2019년부터 AFC가 주최하는 공인 경기에서 미국 업체인 나이키의 공을 대신해 몰텐이 제조한 공을 공인구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몰텐사의 공인구는 AFC가 주관하는 국가대항 남녀 경기와 유스 축구 및 풋살 대회의 공식 사용구로 쓰이고 있다. 
 
몰텐사는 195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설립 된 이후 세계농구연맹(FIBA), 국제배구연맹(FIVB), IHF(국제핸드볼연맹)의 공식 사용구 및 공인구를 제공해 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공식 사용구인 팀 가이스트를 아디다스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납품하면서 국제 축구 용품시장에 발 빠르게 진출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유로파리그도 2018~2019시즌부터 공식 사용구로 종전 아디다스 대신에 몰텐을 사용하고 있다.
 
몰텐코리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AFC와 몰텐의 계약은 나이키가 계약을 더이상 진행하지 않아 AFC가 몰텐에 사용구를 제안해 계약된 것"이라며 "정확한 계약 기간은 밝힐 수 없지만 통상 3~5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 스타와 낫소 같은 국내 스포츠 브랜드가 있지만 글로벌화 되지 않고 제품개발력이 떨어져 국내에만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나이키, 아디다스 등 브랜드 회사와 몰텐, 미카사와 같은 제조기반의 용품회사와 같이 국내 브랜드 회사도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3세 이하 대표팀이 AFC 주관 2020 AFC 23세 이하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며 상금 57여억원을 챙겼다. KFA

◆ '상금 0원' 열정페이 → 167억 원으로…재팬 머니의 힘
 
지금까지 AFC가 주관하는 대회에는 '열정페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5년 전 성인대표팀대회인 호주 아시안컵 대회까지만 해도 대회 참가비는 물론 우승상금 역시 단 한 푼 없이 숙소와 항공편만 제공됐다. 우승국 혜택이라곤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와 명예 정도였다. 대회 참가에 따른 선수 출전 수당과 비용 부담은 각국 협회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AFC는 이번 대회에 총상금 1480만 달러(약 167억 원), 우승상금 500만 달러(57억 원)을 내걸었다. 한국이 우승하면서 대한축구협회(KFA)는 올해 각급 대표팀 운영 예산 약 229억 원의 4분의 1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됐다.
 
AFC가 통 큰 상금을 내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연 재팬 머니다. 일부 중동 자본이 유입되기는 했지만 축구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일본계 돈이 큰 몫을 담당했다. AFC 후원사로 참가하고 있는 일본 기업은 KDDI, 세존카드(Saison card), 도요타자동차, 아사히신문, 패밀리마트, 마키타, 니콘까지 7개사로 이번 대회 광고판을 내건 13개 AFC 후원사 중 절반을 웃돈다. 중동 자본으로는 UAE환전센터, 샤라프 DG가 이번 대회만 후원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지난 대회까지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이 각각 공식스폰서와 공식서포터로 참여했지만 이번 대회에 모두 빠졌다. 일본이 세계 축구계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는 것과 대조된다. 

2020 AFC U-23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와 조별예선에서 패배한 일본 선수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아쉬워 하고 있다. 그 뒤로 일본 기업 다이손의 광고판이 눈에 띈다. AP=연합뉴스

◆ 글로벌 네이션스로 새 판 그리는 일본
 
일본의 야심은 FIFA가 구상 중인 '글로벌 네이션스리그'(가칭)로 향하고 있다. 글로벌 네이션스리그는 유럽과 북중미, 남미 대륙 축구연맹에 이어 아시아축구연맹도 국가대항 축구 리그(네이션스리그)를 출범해 실현하는 계획을 말한다. 
 
FIFA는 2018년부터 대륙간 클럽 최강자전인 클럽월드컵을 확대 개편하고 새로운 국가대항전 창설을 추진해 왔다. 현재 유럽축구연맹에서 시행 중인 네이션스리그를 전 대륙으로 확대하고, 대륙별 상위 팀들을 모아 '미니 월드컵'으로 비유되는 글로벌 네이션스리그를 치르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런 FIFA의 준비에 빠르게 보조를 맞추고 있는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 기업은 공격적인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실제로 FIFA는 2018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비롯한 아시아•중동 투자자들로 이뤄진 컨소시엄으로부터 250억 달러(약 27조 원)의 투자를 약속 받아 국제대회 체질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수 년 안에 아시아 대륙단위의 네이션스리그가 펼쳐진다면, AFC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 부은 일본의 입김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팬 머니가 축구계의 판도를 흔드는 가운데 한국 축구도 이런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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