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젠더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이 때 방송, 가요 등 연예계에서 보여주는 젠더 관념 역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아이돌 비즈니스에서 성 관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느냐는 눈여겨 봐야 할 일. 이에 가요계 유명 기획사들에서 배출한 아이돌 그룹들의 프로파일을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최근 1990년대 유행했던 장르, 그 시절 활동했던 가수들이 속속 방송에 등장하면서 K팝 아이돌 시장을 열었던 그룹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국내 가요계를 평정했던 아이돌 스타들. 이들은 현재의 '아이돌' 콘셉트의 기반을 다지며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영향을 줬다. 특히 걸 그룹 1세대라 할 만한 S.E.S, 핑클, 베이비복스는 서로 전혀 다른 콘셉트와 노래들로 사랑을 받은 케이스. 현재처럼 많은 그룹들이 존재하진 않지만 서로 다른 개성으로 다양성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S.E.S 유진, 바다, 슈(왼쪽부터).

S.E.S

성격: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높음
특징: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신비로움
관심사: 사랑, 응원
연애관: 아닌 듯 하면서도 적극적이게
한 줄 정리: "그대에게 줄게요. 나의 모든 사랑을."('꿈을 모아서', 2001)

S.E.S를 청순하고 신비로운 요정들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이들의 노래를 뜯어 보곤 놀랄 것이다. 데뷔 곡부터 "왜 내게 말을 못 해. 이미 지나간 일들. 진부한 옛 사랑 얘기. 솔직히 말을 해줘 그렇지만 너에겐 오직 나뿐인 거야"('아임 유어 걸', 1997)라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S.E.S는 데뷔 이래 줄곧 특유의 긍정성과 높은 자신감으로 다른 이들에게 사랑과 응원을 전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손을 대면 부서질 것 같고 상처 입을 것 같지만 이런 유약함은 S.E.S와 먼 이야기. 사랑을 할 때는 "그대에게 줄게요. 나의 모든 사랑을"('꿈을 모아서', 2001), "나에겐 지금 너보다 너에겐 지금 나보다 소중한 다른 사람 없다면 함께 영원히 같은 집에 서로 얼굴을 보며 살아가"('너를 사랑해', 1998)라며 적극적으로 고백하고, 힘을 받기보단 "우리 인생에서 이보다 힘든 일 얼마든지 많을 거야. 이제부터 시작일 지도 모르니 오늘은 나랑 저 멀리 떠나"('한 폭의 그림', 2017),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이라며 힘을 나눌 줄 안다. 이런 S.E.S야 말로 외유내강의 대표자 아닐까.

핑클 이진,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왼쪽부터).

핑클

성격: 겉보기엔 활기차 보이지만 의외로 많은 말을 속에 담는 스타일
특징: 옆 집 소녀 같은 친근함
관심사: 사랑, 연인
연애관: 아닌 듯 하면서도 적극적이게
한 줄 정리: "이젠 내 사랑이 되어줘. 내 모든 걸 너에게 기대고 싶어."('영원한 사랑', 1999)

S.E.S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신비로운 요정의 이미지였다면 핑클은 마치 '옆집에 있을 것 같은 소녀'의 친근함으로 승부했다. 데뷔 곡인 '블루 레인'은 짙은 감성을 담은 곡이지만 이후 '내 남자친구에게'(1998), '자존심'(1999), '영원한 사랑' 등 수줍게, 또 새침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들을 발표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겉으로는 말괄량이처럼 활기차게 보여도 사실 못다 한 말들을 마음에 많이 쌓아두고 있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 사랑하는 연인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나를 위해 힙겹게 널 내 곁에 두는 것보다 널 위해서 내가 떠날게"('루비', 1998)라고 말하고 돌아설 정도로 답답한 면도 있지만, 이런 세심한 성격 덕에 "겨울 내내 너를 생각하며 만들던 빨간 스웨터도 입혀 줄 거야. 항상 포근했던 니 마음과 어울려 날 생각하면 정말 좋겠어"('화이트', 1999)라며 선물을 건넬 만큼 주는 사랑의 기쁨도 크게 느끼는 편이다.

베이비복스 간미연, 이희진, 김이지, 심은진, 윤은혜(왼쪽부터).

베이비복스

성격: 어느 땐 세보였다가 어느 땐 또 부드러웠다가
특징: 화려한 스타일링
특기: 연인 사이 심리전에 능숙
연애관: 할 말은 한다
한 줄 정리: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만들 거야."('겟 업', 1999)

'여전사'라는 파격적인 콘셉트로 걸스 힙합에 대한 관심 높인 베이비복스. 다양한 1세대 걸 그룹들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띄는 화려한 스타일링과 파격적인 패션이 특징이다. '여전사'라는 수식어로 익숙하지만 사실 데뷔 땜만 해도 "사랑한다고 하나뿐이라고 예쁘게 안아준다면 야야야 모든 것이 달라질거야야야"('야야야', 1998)라고 노래하던 수줍은 소녀였다. 그랬던 베이비복수가 달라진 건 1999년 발표한 '겟 업' 때부터. 이 때부터 이들은 관심 있는 상대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할 말은 하는 포지션으로 본격적인 '여전사' 느낌을 내기 시작했다. 특이점은 베이비복스 만큼 연인 사이 심리전에 능숙한 1세대 아이돌 스타는 없다는 것.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하는 상대에게 "요즘에도 그런 이유로 이별하는 사람도 있니. 너 떠나고 싶다면은 날 이해시켜봐.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너의 말대로 사랑한다면 내가 그렇게 괜찮다면 너는 왜 떠나려 해"('패자부활전', 1998)라며 촌철살인을 날리고, 짝사랑을 하면서도 "너는 이미 너도 모르게 날 기다리게 될 거야. 받는 사랑에 이미 넌 익숙해졌으니까"('바램', 2003)라는 여유로운 태도로 오히려 짝사랑 받는 상대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행간을 읽을 줄 아는 베이비복스는 똑소리나는 걸 그룹이었다.

사진=OSEN, 포트럭주식회사 공식 페이스북, 베이비복스 정규 4집 재킷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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