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회장 연합뉴스

[한스경제=송진현]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대혼돈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중징계를 내린 이후 우리금융호가 크게 휘청이고 있다.

급소를 가격당한 장수는 거취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우리금융지주는  CEO 리스크에 따른 경영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CEO 중징계를 맞닥뜨린 임직원들 사이에는 벌써부터 보신주의가 나타나면서 한국 금융산업의 중심축 중 하나인 우리금융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오는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이사회로부터 연임을 확정받은 손태승 회장은 이번 문책경고 조치에 따라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금감원 중징계를 받아들이면 3월 주총에서 연임이 불가능해지면서 사퇴하거나, 아니면 행정소송을 통해 징계효력을 일시 정지시켜 3월 주총에서 연임을 강행하는 것이다.

두 방안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해법마련이 쉽지않아 보인다.

우선 손회장이 사퇴할 경우 내부에선 그를 대체할 카드가 여의치 않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2014년 11월 민영화 과정에서 해체된 뒤 4년여만인 지난해 재출범했다. 때문에 손태승 회장 이외에는 내부 인사 중 은행장을 거친 인물이 아직 없다. 우리금융 내부에선 회장감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징계와 맞물려 외부에서 낙하산 인사가 회장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낙하산 인사의 가장 큰 폐해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서 ‘단물’만 빼먹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출범 초기인 우리금융지주에 낙하산 인사가 회장으로 들어온다면 시행착오만 겪다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은행 노조가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에 강력 반발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우리은행 노조는 지난달 31일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이 내려지자 성명을 내고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파악을 외면한 채 금융회사 제재에만 혈안이 된 면피용 전략”이라고 금감원의 징계를 맹비난했다. 우리은행의 우리사주 조합은 6.42%의 지분을 갖고 있어 노조의 의견은 곧 일부 주주의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노조는 지난해부터 손 회장의 연임을 지지해 왔다.

우리금융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5대 과점주주들도 지난해 말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가 사전 통보되었음에도 손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손 회장에 대한 두터운 신임과 아울러 적절한 대안도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익’에 민감한 과점주주들이 손 회장의 경영 능력을 의심했다면 이런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 회장이 사퇴를 거부하고 행정소송을 통해 금감원과 정면으로 맞설 경우 향후 우리금융지주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손태승 회장이나 우리금융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감독원의 제재심 과정에서 DLF 사태와 관련해 CEO 징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논란이 크게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을 중징계한 것이 적절한 처사였는지 진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의 자유 시장경제 원칙을 떠올려 본다.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는 어디까지나 보완성을 가진다는 것이 우리 헌법 원칙이기도 하다.

“통제는 자승(自乘) 원칙에 따라 더 많은 통제를 요구하며 관료주의, 획일주의, 형식주의에 치우쳐 비능률, 낭비, 빈곤, 무기력, 몰인정을 배태한다는 사실을 전체주의 국가의 통제경제 실태에서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각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을 그 이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기본권 주체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자결권과 자율성에 입각하여 보장되어야 한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문 중 일부다. 국가는 자유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하는 보충의 원리를 설파한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유시장 경제의 바탕 위에서 금융회사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당시 취임사 중 관련 내용이다.

“금융산업 혁신을 가속화하겠다. 그동안 금융산업은 보수적이고 촘촘한 규제로 인해 법령에 없는 새로운 서비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출현시키고 새로운 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금융규제 샌드박스 운영을 활성화함으로써 금융규제의 동태적 개선체계를 구축하겠다.”

하지만 이번 DLF에 대한 CEO 중징계로 은행권의 혁신 움직임은 크게 위축되고 보신주의만 판을 치게 생겼다. DLF라는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다가 빚어진 실수를 기화로 아예 혁신금융의 싹을 자른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 볼 일이다.

CEO 입장에서도 자칫 과감하고 혁신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했다가 중징계로 물러날 수 있는 금융 환경에서 누가 몸을 던져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렇다면 국내 금융산업은 제자리걸음만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우리보다 한참 앞선 금융 선진국 미국에서 금융당국이 CEO에 관한 한 주주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CEO 제재에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을 우리 금융당국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CEO가 수시로 바뀔 경우 시행착오만 반복하다가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금융감독원은 그동안 감독기관보다는 권력기관으로 변모해 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DLF 사태와 관련한 CEO 중징계 과정을 지켜보면서 금감원이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을 다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한스경제 발행인>

송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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