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대한탁구협회 사무총장이 2020부산탁구세계선수권을 50여일 앞두고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각오를 전하고 있다. 부산=심재희 기자

[한스경제ㅣ부산 벡스코=박대웅 기자]1973년 4월 9일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태극낭자들은 당시 세계 최강이던 중국과 일본을 격파하고 9전 전승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건국 이후 첫 국제대회 금메달이자 한국 구기가 세계를 제패한 첫 출발이었다. 한국 체육사의 역사를 쓴 주인공은 이에리사, 박미라 그리고 정현숙 '트리오'였다.

태극낭자의 세계 제패는 온 국민을 흥분시켰고, 동네마다 탁구장이 성업을 이뤘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지금. 탁구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그가 다시 뛴다. 사라예보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던 탁구 여제는 이번엔 선수가 아닌 체육행정가로 변신해 다시금 탁구 르네상스 재현에 발벗고 나섰다. 무대는 한국 탁구 재도약의 시발점이 될 부산세계선수권대회다.

오는 3월 22일부터 3월 29일까지 탁구의 도시 부산에서 한국 탁구 역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2020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50여 일 앞두고 탁구의 열기로 가득 찰 부산 벡스코(BEXCO)에서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정현숙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났다.

2020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제막식 모습. 정현숙 사무총장(왼쪽 세 번째)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부산시 제공

◆ 탁구의 메카 부산, 태극전사들 선전 기대

정현숙 사무총장은 세계선수권 개최지 부산이 탁구의 도시이자 최적의 입지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공항과 철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부산은 전 세계 선수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서 "개최 장소인 벡스코 인근에는 호텔과 관광지, 음식점 등이 다양하게 형성돼 선수들이 경기와 연습, 휴식을 취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유남규, 현정화 등을 배출한 탁구의 메카 부산시의 도움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면서 "대회 유치 후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벡스코 임대료 지원 등 부산시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부산시와 소통해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그는 국민들의 성원이 대회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힘주었다. "1988년 유남규(단식), 양형자·현정화(복식) 금메달과 2004년 아테네 대회 유승민(단식) 금메달은 모두 전 국민적 응원의 힘이 전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도쿄올림픽에서도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 부산에서 펼쳐지는 도쿄올림픽 전초전

이번 부산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도쿄올림픽을 4개월여 앞두고 펼쳐진다. 세계적인 선수들이모두 참가하기 때문에 도쿄올림픽 전초전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현숙 사무총장도 이번 대회가 2020 도쿄올림픽의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고 짚었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의 최종모의고사이자 전초전, 탐색전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번 대회 참가 멤버들이 대부분 도쿄올림픽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객관적인 전력은 역시 중국이 세계 최강이다. 정현숙 사무총장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의 강세를 예상하면서도 한국의 선전을 기대했다. 그는 "중국의 벽은 분명 높고 넘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우리에게도 승산은 있다”고 내다봤다. "여자팀 5명과 남자팀 5명의 선수들이 그동안 똘똘 뭉쳐 호흡을 맞춰왔고, 큰 대회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 여기에 '안방'이라는 이점까지 더한다면 중국은 물론 세계 최강의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현숙 사무총장의 기대는 막연한 그림이 아니다. 지금까지 국제 대회에서 선전을 펼쳐온 태극전사들의 저력을 굳게 믿고 있다. 그는 기대주로 남자 단체전에 나설 정영식, 이상수, 장우진을 지목했다. "정영식, 이상수, 장우진은 최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면서 "부산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도쿄올림픽에서의 선전도 기대한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당시 선수단장 역할을 수행했던 정현숙 사무총장. 연합뉴스

◆ 북한, 끝까지 기다린다

그동안 탁구는 ‘통일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다. 당시 분단 후 처음으로 단일팀을 이룬 남과 북은 46일간 합동 훈련을 하며 호흡을 맞춘 끝에 기적과 같은 성과를 달성했다. 남한의 현정화와 북한의 리분희, 유순복 조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부산 대회는 1991년의 영광 재현과 함께 경색된 남북 관계에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북한의 참가는 묘연한 상황이다. 정현숙 조직위원장은 끝까지 기다린다는 자세를 취했다. "북한이 1월 17일 엔트리 마감 시점까지 출전 선수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국제탁구연맹은 이번 대회가 남북한 화합과 평화의 장이 되길 바라고 있다”며 “북한이 참가를 희망한다면, 국제탁구연맹이 받아준다는 입장이다. 남북이 함께하길 원한다. 꼭 와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현숙 사무총장은 여성 탁구인이자 경기인으로 처음으로 대한탁구협회 사무총장에 올라 불철주야 열심히 뛰고 있다. 끝으로 ‘부담감’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책임감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현재 전문 선수로 등록된 수가 200명이 채 안 된다. 엘리트 체육에서 벗어나 스포츠클럽, 동호인 등 생활체육과 전문선수 육성이 상생할 수 있는 탁구 생태계 조성에 더 힘 써야 한다. 300만 탁구 인구 확보가 목표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가 탁구 부흥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부산 벡스코=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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