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다른 감독들과 함께 오등분 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 당시 밝힌 소감이다. 봉 감독의 재치 있는 언변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봉 감독은 시상식 이후 돌비극장 인터뷰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꿈에서 깰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봉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아카데미상을 꿈꿨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좋아했는데, 번번이 감독상을 못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답답했다”며 “영화 ‘디파티드’(2007년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를 처음 봤을 때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초현실적이고 영광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자막이 있는 외국어 영화가 상을 휩쓴 것과 관련해 “제가 1인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때늦은 소감이 아니었나 싶다. 이미 장벽은 무너지고 있는 상태였고, 유튜브 스트리밍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이미 모두가 연결돼 있다”며 “이제는 외국어 영화가 이런 상을 받는 게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한 이유에 대해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봉 감독은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수상 당시에도 각기 다른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작품상 수상 후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SNS를 통해 공개된 ‘기생충’ 팀 비하인드 영상에서 “미쳤다. 믿을 수 없는 밤이다. 믿기 어렵다. 큰 영광이다”라며 “깨어나면 이게 꿈일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약간 모든 게 초현실적이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오스카 트로피 어디 있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각본상 수상 당시에는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했다. 감독상을 받은 후에는 영어로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가리키며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긴 말이 있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한 말이었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도 영광인데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라고 말해 모두를 기립박수 치게 했다.

그 동안 봉 감독의 소감 한 마디는 외신에서도 조명을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밝힌 소감은 명언으로 꼽힌다. “wow amazing. 저는 영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통역사가 있다. 자막, 서브타이틀의 장벽은 장벽도 아니다”라며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라고 밝혔다.

봉 감독은 자신이 아닌 주변에게 공을 돌리는 소감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일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받은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가 쓴 대사와 장면들을 훌륭하게 화면에 펼쳐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살아있는 배우들의 표정과 보디랭귀지야말로 가장 유니버설한 만국 공통어”라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지난 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에도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 분들이 없었다면 단 한 장면도 찍을 수 없는 영화였다. 함께 해 준 배우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며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인 우리 송강호님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고 마이크를 돌리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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