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혁 KBL 심판. /KBL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그 옛날 택시를 타면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엔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 2일 원주 DB 프로미-안양 KGC인삼공사전에 나서 프로농구 사상 처음 10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장준혁(50) KBL 심판은 12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경기를 앞두고 항상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를 생각한다. 저희 심판들은 경기가 잘 끝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자 소망이다”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선수는 강동희

이후 네 경기를 더 뛰어 총 1004경기에 출전했다는 장준혁 심판은 1997년 2월 2일 데뷔전(당시 수원 삼성 썬더스-안양 SBS 스타즈)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막내 심판이었고 개막 다음 열린 첫 경기였던 터라 떨렸다. 고참 심판님들이 ‘네 담당구역 잘 지키고 잘 하라’고 말씀하신 게 떠오른다”고 전했다. ‘1000경기째 출전 땐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자 “전날 홍기환 심판부장님께서 경기를 배정하면서 ‘(장)준혁아 너 내일이 1000경기째다’라고 말씀해주셨다”라며 “그래서 더 집중하고 책임감 있게 해서 사고 없이 경기가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변했다.

장 심판은 농구를 좋아해 부산 동아대학교 체육학과 시절부터 동아리 농구를 즐겼다. 그는 “대학생이었던 1990년부터 대한농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심판강습회를 다녔다. 이듬해 2급 심판 자격증을 획득했고 1994~1995년쯤 1급 심판 자격증을 따냈다. 대한농구협회에서 5~6개월간 진행하는 심판학교를 1기생으로 수료했다”며 “연습 경기 위주로 심판을 보다가 대학 졸업 전 KBL에 지원해서 심판이 됐다”고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체력은 심판에겐 기본 사항이다”라며 “비 시즌 때는 수영을 해서 체력을 키우고 시즌 때는 경기가 없는 날 오후 2~4시에 KBL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해왔다”고 자기관리 노력에 대해 털어놨다. 경기 비디오 리뷰와 규칙 공부 등도 필수로 해야 하는 노력이라고 꼽았다.

장 심판은 기억에 남는 선수로 강동희(54) 전 감독을 거론했다. “심판 선배님들은 ‘강동희 선수가 판정에 대해 어필하면 그건 심판이 잘못한 것이다’라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만큼 강동희 선수는 평소에는 항의를 하지 않고 정말 억울한 느낌을 받을 때만 심판한테 와서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저도 그런 걸 느꼈다”라고 떠올렸다. 심판은 경기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다. 프로농구 초창기 때와 현재의 경기력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기술이나 경기력은 예전이 좋았던 것 같다”며 “다만 요즘 선수들은 스피드가 좋고 엔터테이너로서 팬들을 흥미롭게 해주는 것 같다”고 비교했다.

장준혁 KBL 심판. /KBL 제공

◆시그널 연습과 OX식 질문은 ‘직업병’

그는 심판의 가장 큰 자질을 두고 “공정성이 중요하다. 양심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 구단들에 신뢰를 받고 잘 소통할 수 있는 능력, 판정의 일관성 유지, 성실한 자기계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심판은 “선수들과 식사자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KBL 심판들은 길거리에서 선수나 팀 관계자들을 만나면 이후 대외 접촉보고서를 써 제출해야 한다. 악수했다거나, 인사했다거나, 어떤 대화를 나눴다는 등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선수들과 학교 선후배일 때가 있어 동창회, 동문회 등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라며 “선수들과는 코트에서 가볍게 인사만 하는 정도다. 심판들은 심판 행동윤리강령에 따라 엄격하게 행동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심판이 되기 위해 늘 긴장하고 노력하다 보니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도 생겼다. 그는 “거울을 보면 시그널 연습을 하게 된다. 후배들에게 질문할 때도 ‘이거 맞냐, 아니냐’고 OX식으로 질문한다”고 웃었다.

장 심판은 향후 심판 직업의 대우나 처우가 개선되길 기원했다. 그는 “아마추어 심판들의 경우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처우가 열악하다”며 “프로인 KBL 심판도 지원자들이 많지 않다. 인신공격성 댓글 등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심판에 대한 악성 댓글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장 심판은 요즘 따로 시간을 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언젠가 해야 할 은퇴를 대비하는 것은 물론 심판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국제농구연맹(FIBA) 인스트럭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다. 그는 “국내에는 심판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게 없다. FIBA 인스트럭터로 전 세계 12명이 일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제가 그걸 획득하면 국내 심판 상황도 좋아질 것이다. 심판 기술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심판 발전을 위해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고 힘주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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